지금, 그 다음을 위한 8분

오는 11월 9일 광진구 광장동 유니클로 악스 홀에서 열릴 <EBS 스페이스 공감 신인발굴 프로젝트-2013 헬로루키(Hello Rookie)> 연말결선. 라운드헤즈, 로큰롤 라디오, 스쿼시바인즈, 아시안 체어샷, 청년들, ECE(가나다 순) 등 6개팀이 올해 최고 신인의 자리를 겨룬다.

사실 음악인에게 '최고'라는 단어만큼 공허한 게 또 있을까. 요즘 밴드씬에 관심이 없는 이들이라면 모르겠지만, 이 날 무대에 서는 여섯 팀은 음악적 스타일도 다르다.

해서 결국 그 날, 자신들의 음악을 얼마나 납득할 만한 퍼포먼스로 구현해 낼 수 있는 팀이 '최고'라는 이름에 어울릴 터다. 즉 그 날 주어진 결선 무대 8분 동안 얼마나 '놀 수 있느냐' 하는 것이 관건인 셈.

프로젝트가 시작된 이래 100여 팀의 뮤지션 집합-뮤지션 1인도 하나의 집합으로 보고자 한다-을 배출해낸 헬로루키는, 그러나 최근 들어 다소 반응이 약해졌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실력 있는 신인들이 경쟁성 대회를 기피하는 경우도 있고, 기업이 됐든 공공기관이 됐든 다른 문화주체에 의한 오디션 행사가 많아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음악적 실력에 비해 그들을 이슈화시킬 수 있는 이야깃거리나 키워드가 부재했던 탓도 있을 터다.

만약 그렇다면 2013년 헬로루키는 이 프로젝트에 있어서 어떤 기점이자 새로운 고민이 시작될 시점이 될 수도 있다. 참가팀 중 국내에서 치러진 국제 음악 컨퍼런스에서 해외 음악 관계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팀도 있고, 오랜 시간 동안 씬에서 활동하며 동료 뮤지션들의 지지를 받아 온 팀도 있으며, 새로운 사운드의 지향을 보여 주는 이들도 있다. 밴드가 됐든 개인이 됐든, 그리고 어떤 스타일이 됐든 지금, 그 다음에 관한 이야기를 엮어낼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인다고 말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금년 몸담았던 다른 매체나 공연 등을 통해 만나 본 참가팀도 있고 음악만 들어 본 팀도 있다. 사실 인터뷰는 헬로루키 홈페이지를 통해 더 잘 볼 수 있을 터다. 그러므로 평론이라기보다는 나름의 뷰 포인트로 이번 헬로루키 무대에서 각 팀마다 기대되는 포인트라든가, 체크해두고서 즐기면 해당 팀의 음악적 매력을 읽거나 받아들이는 데 힌트가 될 포인트들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라운드 헤즈(8월의 헬로루키)

까다로운 사운드 환경에서의 적응도 & 새 작업의 방향

지난 5월 셀프타이틀의 1집 앨범을 발표한 라운드헤즈(Roundheads). 혹자는 이들의 음악에 '서투름'이라는 수사를 썼는데,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다. 새침하기까지 한 바운스의 리듬기타 커팅 사운드를 박효(박효정)의 보컬이 곁에서 어르는 듯한 "Human Describe", 라틴 리듬에 록적이기까지 한 압력을 담아 낸 "도약(Meari)" 등의 트랙은 앨범에 담긴 이 팀의 음악적 에너지 운용 능력의 능숙함을 보여 준다.

귀에 들어오는 건 코러스가 살짝 걸려 마치 GRP 계열의 퓨전재즈 느낌이 드는 기타 톤. 재즈를 지향하는 젊은 뮤지션이라면 몰라도 최근 다소 거친 톤이 선호되는 모던락이나 팝 계열과는 차별화된 사운드를 들려준다. 다만 8월 방송분 당시에는 기타 사운드가 다소 동떨어진 느낌이 들어 아쉬운 면이 있었는데, 11월 9일 무대에선 후임 기타리스트와의 합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도 기대해볼 만하다. 새로운 결과물이 준비 중에 있다고 했으니 그 튠이 어떤 방향일지 가늠해 보면서 즐기는 것도 괜찮을 터다. 다소 컨트롤하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진 악스홀의 사운드가 어떤 방향으로 잡히느냐에 따라 이들의 컨디션이 100%에 가깝게 발휘될 수 있을까.

기록적 폭염-내년엔 또 내년의 폭염이 기다리고 있겠지만-7월 한국 콘텐츠진흥원의<K-루키즈>8월 <KT&G 밴드 디스커버리> 등 상복이 많다. <2013 헬로루키> 연말결선까지 장악한다면 겨울도 뜨거울 텐데, 지켜볼 따름.


로큰롤 라디오(7월의 헬로루키)

숨겨지지 않는다, 당신들 은근 노리고 있는 거

밴드 이름이 길면 통상 영문 약칭으로도 많이 쓴다. 로큰롤라디오(Rock'n Roll Radio). 가끔 로큰롤'라이도'-'라이더' 같고 이것도 그럴 듯한데?-라고 오타를 내기도 쉬워서 이들의 표기대로 'RNRR'이라고 표기하기로 한다. 어쩐지 굴러가는 느낌도 좋고 '아레날랄'이라고 하면 아드레날린 같은 어감도 들 만큼 발랄하다.

'결선 8분 내내 달리겠다'는 이들의 공언은 이들이 또 다른 한 팀과 함께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히고 있다는 것에 대한 또 다른 대답이 아닐까 싶다. 기실 이들은 2012년 음악 관계자들의 관심을 가장 많이 끌었던 밴드다. 단현의 멜로딕한 리프지만 뮤트한 다른 줄까지 힘차게 긁어내는 브러싱(brushing) 톤은 리듬 파트와 큰 공명을 이룬다. 여기에 효율적으로 사용되는 딜레이 등 공간계 이펙터를 통해 곡의 시그니처가 되는 악상들을 입체적으로 살려내는 데 능하다. 리드 기타의 김진규와 보컬을 겸한 김내현의 합은 원래 무대에 최적화돼 있다 볼 수 있는데 11월 9일, 최고의 선택을 받는 데 유리한 조건이 아닐까.

RNRR은 오래 활동한 밴드는 아니지만 빠르게 마니아를 확보해 왔으며 동료 뮤지션들에게도 인기가 높은 팀이다. 앨범 재킷에 보이는 B급 호러만화 감각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스쿼시바인즈(6월의 헬로루키)

앨범만 나왔다면

이기범은 중저음 배음이 멋진 보컬리스트다. 그런지 시대를 장식했던 몇몇 유명 보컬리스트의 이름이 떠오르는데 그에 비추어도 결코 부족하지 않다. 그들의 사운드에는 요행을 바라는 마음이 없으며 'In my way'("파문" 중에서)를 거칠게 외친다. 그렇게 일상적인 리듬과 멜로디를 거부하며 거친 파문이 되고자 한다.

스쿼시 바인즈(Squash Vines)의 사운드를 6, 70년대의 사운드와 직접 접속시키는 것은 다소 무리라고 보인다. 우선 기타만 해도 기타리스트 홍승기가 레스 폴의 두터운 중음역에 큰 장식이 없는 사운드를 들려주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거친 퍼즈가 강한 스토너(stoner: 6, 70년대를 모델로 한 복고를 넘어 의고 타입 락 사운드를 지칭하는 용어) 사운드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6월의 헬로루키' 동영상으로 그들의 "Blackhole Man"을 들으면 코러스(패닝 속도를 줄인 플랜저 효과일 수도 있다) 이펙팅이 살짝 들어가 퍼지하기보다는 다소 꾸물거리면서도 끈적한 질감을 선사한다.

오히려 그런 복고적인 인상이 나는 것은 사운드보다도 작곡 스타일이 아닐까 싶다. 인상적인 예로는 역시 "Blackhole Man"을 다시 들고 싶다. 주목할 것은 엔딩부인데 기타 솔로 그 아래 리듬의 변화가 보이는 조합, 특히 드럼의 선 굵은 타격 사이에 다급하게 채워지는 베이스의 노트들은 마치 전성기 글렌 휴즈(Glenn Hughes, ex. Deep Purple)를 떠올리게 하는 면도 있다.

물론 스타일은 다르지만, 강한 남성적 힘, 그리고 메트로놈과 상관없이 인간임을 주장하는 템포 전개 등은 강력한 우승후보로 거론되는 어느 팀과 묘하게 캐릭터가 겹칠 수도 있다-내일 두 번째 프리뷰에 등장할 그 팀, 의외로 긴장해야 할 대상이 이 팀일 수도. 스쿼시바인즈 멤버들의 개인적 사정으로 금년 공연이 지난 해에 비해 뜸했고, 아직 앨범이 나오지 않았다는 게 당일 관객 호응 및 몰입도에 있어서 약간의 변수일 수 있겠다. 앨범만 다소 일찍 나왔어도 이들의 인지도 자체가 달라졌을 테고, 그랬다면 이번 <헬로루키 2013>자체가 씬의 화제가 됐을 수도 있을 터다. 물론 인간의 과거엔 가정이 필요없다. 다만 9일 무대에서 의외로 가장 지켜보아야 할 팀이 이 팀일 수도 있다. | 한명륜 evhyjm@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