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닐로 레아 & 플라비오 볼트로(사진제공: 플러스히치)



2013 결산 시리즈의 또 하나로 '올해의 공연장'이라는 주제를 택했지만, 몇 개의 공연장을 택해 순위를 매길 생각은 없다. 냉정히 '톤 오브 에이지'는 그런 평가를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 더욱 그 울림이 유효했던 공연장은 분명히 있다. 서울 중구 정동에 위치한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 성당이 바로 그곳이다. 역사적으로 입혀진 음악의 외투를 벗겨 보면 결국 그 안에 남아 있는 것은 신을 찾는 목소리일지도 모른다.

알려진 정보만으로 어느 쪽이 옳은지를 명확히 말할 수 없는 철도파업. 호소할 것이 있는 이들은 종교 시설을 찾았다. 이 장면을 보며 떠오르는 공연장은, 6월 13일 다닐로 레아와 플라비오 볼트로의 공연이 있었던 대한성공회 서울 주교좌성당이었다.


글_한명륜 사진_플러스히치 제공/한명륜



자연스럽고 다층적 배음 발생하는 '화강암 울림통'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 성당(이하 서울대성당, Saint Mary & Nicholas Church)은 이미 클래식 공연 및 녹음 장소로 전문가들 사이에 좋은 평을 받고 있는 공간이다. 건물을 위에서 보면 한 쪽이 긴 라틴 십자가 형태를 보이고 있는데, 내부에서 보자면 십자가의 교차점을 중심으로 긴 쪽이 라틴 십자가의 아래쪽이자 예배공간, 짧은 쪽이 감실(龕室: 제단이 있는 움푹한 공간. 교회 공간 내에서 가장 성스러운 영역)이 있는 십자가 위쪽 공간이다.


교차점 양 옆으로도 날개 형태의 공간인 익랑(翼廊)이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그 날개의 끝에서 신도들의 공간이 있는 십자가의 아래쪽 부분을 좌우에서 감싸며 내려가는 측랑(側廊: 측면 복도)가 있다.


설명이 복잡한 것 같지만 사실 교회 건축에서 울림(acoustic)이란 절대적인 요건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해는 어렵지 않을 터다. 마이크나 PA 장치가 없었던 시절 설교자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공명이 있어야 했다. 십자가의 교차점에서 최대한 감실 쪽에 가깝게 서게 되는 성직자의 목소리는 일단 감실과 익랑 공간에서 증폭된다. 특히 돔 형태를 이루고 있는 감실은 일종의 이퀄라이저 기능도 맡고 있다. 그러니까 십자가 교차점의 위쪽은 프리앰프와 파워부를 갖춘 앰프헤드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 울림을 받아내는 신도 공간과 그 좌우의 측랑은 캐비닛 스피커가 된다. 


측랑에 주어진 역할은 좀 더 막중하다. 화강암의 재질이 갖는 딱딱한 특성상 발생할수 있는 다소 날카로운 반사를, 높은 지붕과 더불어 다소 부드럽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신도뿐만 아니라 이 공간에 들어선 누구라도 감싸고자 하는 선한 울림이 가능하도록 계산된 설계인 것이다. 날카로운 고역대의 소리도 자유롭게 쭉 뻗는 한편 충분한 울림의 공간으로 인해 낮은 배음도 충분히 살아난다. 물론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주파수의 대역은 한정돼 있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영역의 배음이 가청주파수의 음색을 결정한다는 사실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는 내용이다.





1922~26, 1994~1996, 70년 공백 후에 완성되다


한국 현대사가 겪은 질곡은 서울대성당이라고 예외일 수 없었다. 1922년 영국 건축가 아더 딕슨의 설계로 짓기 시작해 1926년 완공됐지만 그것은 재정적 어려움으로 인한 임시완공일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첩첩산중이었다. 1994년부터 완공의 책임을 맡은 한국 건축가 김원은 애초에 철 구조물과 유리를 통해 현대 건축물로서 본 성당을 완성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영국 왕립 건축가협회의 도움을 받아 아더 딕슨의 원 설계도를 접한 후 이를 근거로 해 미완성된 부분을 완성하는 쪽을 택했다.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이 성당의 건축을 진행한 인물은 한국 성공회의 3대 주교인 트롤로프(N. M. Trollope)였다. 사실 이 성당의 건축에 관한 논의는 훨씬 전인 1대 코프(C. J. Corfte) 주교, 2대인 터너(A. B. Turner) 주교 때도 이루어졌다. 이들이 서울에 주교좌 성당을 지으려고 한 것은 일차적으로 한국에 있던 영국인들을 위한, 건축적으로 훌륭한 예배공간이 부재한 탓이었다. 물론 경기도와 충청도 일대에 흩어져 있던 포교 시설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행할 구심점도 필요했겠지만, 초대 신부 코프가 영국군의 군종 사제였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더군다나 1906년 일본은 통감부령 제45호 '종교의 선포에 관한 규칙'을 발표하여 한국 내 종교시설 건립과 포교 행위에 대한 통제력을 행사하던 시기였다.


물론 영국 본토에서 이 성당의 건립을 위해 모금 행사가 진행되기도 했지만 결국 부족한 자금적 문제를 무리해서 해결해 가면서 완공을 시도하지 않았다. 굳이 일본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키가 되는 것은 화강암 자재와 조선총독부다. 성당 건축이 임시준공 즉 사실적으로는 중단된 1926년 10월은 조선총독부 청사가 완공된 해다. 이 청사의 완공을위해 일제는 한국의 내로라 하는 화강암 산지를 파헤쳤다. 1926년 완공분까지의 석자재는 강화산 화강암이었다. 대한성공회 측에서는 자본적인 문제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면에서도 이를 완공할 수 없는 이유가 있었던 셈.


서울역사박물관이 2009년 발표한 자료 <서울의 근대건축>에 따르면 김원이 건축을 재개한 1994년 당시에는 강화에서 화강암 자재가 거의 고갈된 상태였다고 한다. 그러므로 현재 건물은 중국 칭다오산 화강암이 같이 들어가 있다. 이 자재가 가장 강화도산과 비슷했다는 이유로 선택된 것으로 알려졌다.



6. 13, 다닐로 레아 & 플라비오 볼트로


지난 6월 13일, 피아니스트 다닐로 레아와 트럼펫 연주자 플라비오 볼트로는 바로 이 곳 서울대성당에서 공연을 가졌다. 초저녁에도 약간 더웠지만 풍요로운 배음과 미세한 진동을 느끼길 바란다는 양해와 함께 주최측은 에어컨을 껐다. 에디터가 앉아 있던 맨 앞자리는 통풍이 잘 되는 편이었는데, 아마 청중 가운데쯤의 위치에 속하는 중간 열 정도의 자리는 더웠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해가 더 기울어 어두워질 무렵에는 약간 선선하기도 했으니 비교적 쾌적했을 거라 기억된다.


날씨는 맑았다. 소리의 매질로서의 공기 상태는 상당히 좋은 조건이 아니었나 싶다. 사실 공연장 뿐만 아니라 이 날의 시공간 자체를 올해의 공연과 공연장으로 꼽고 싶은 게 아닐까 자문해본다. 처음엔 다소 가벼운 듯 했으나 강한 터치에서는 타이트하게 살아나는 피아노의 저역대, 휴지기의 숨소리에도 피치가 느껴질만큼 울림이 디테일했다. 특히 빠른 프레이즈를 연주하는 동안에도 두 악기의 사운드가 겹치거나 뭉개지지 않고 전달되는 편이었다. 다만 맨 앞쪽에 있던 청자들에게는 소리가 직접 부딪치는 기둥이라든가 익랑의 벽 때문에 아주 조금 날카롭다는 인상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이 날 서울대성당에서 펼쳐진 다닐로 레아와 플라비오 볼트로의 공연은 어느 공연에 비해서도 부럽지 않을만한 관객들의 몰입도가 돋보였다. 일단 이들이 2011년에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을 찾아 어느 정도 국내 재즈팬들에게는 익숙했을 수도 있다. 실제 이들은 유럽에서 각자의 일정을 소화하기 바쁜 이들인데, 한국의 플러스히치와 코튼클럽 재팬이 협력해 한국과 일본만을 위해 듀엣 공연을 펼쳤다. 특히 유명 오페라의 아리아를 연주해 수록한 이들의 듀엣 앨범 [Opera]가 한국 팬들의 취향에 부합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을 듯하다.


추위가 일찍 찾아왔다. 공기가 얼어 소리가 뚫고 지나가기에 어려움이 있는 모양이다. 물론 시절이 이러니 여름이라고 말이 잘 통하랴만, 그래도 지난 6월 13일 서울대성당에서 열린 이 공연이 그립다. 그 공연장에서 막힘없이 울려퍼지던 건반과 트럼펫 사운드, 그걸 넉넉하게 받아주던 그 날의 공기는 기약이 없을 것만 같아 두렵다. | evhyjm@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