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션들, 공감에 대한 중요성 인식 바탕으로 빠른 실천 보여과제는 이 다음



EBS <스페이스, 공감>의 축소 운영계획이 발표된 후 음악계 많은 관계자와 음악 팬들은 크게 동요했습니다. SNS 뿐만 아니라 주요 매체의 지면도 이를 단순히 한 프로그램의 폐지 이상의 중요한 문제로 다루었죠. 공기업의 부채 절감, 민영화 지향적인 청사진 제시와 맞물려 유탄을 맞은 EBS가 엉뚱한 프로그램에 화살을 돌린 데 대한 비난 여론이 컸습니다.


사실 이런 상황이 오면 각자 처한 입장에 따라 스탠스가 달랐습니다. 물론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 때문에 어떤 공동의 대응을 하는 데 있어서 음악계는 다소 퇴행적인 모습을 보였던 게 사실입니다. 특히 영화'판'에 비하면 더욱 그런 점을 느낄 수 있죠.


그러나 씬의 대처는, 여느 때의 문제상황과는 조금 다른 움직임이 감지됐습니다. EBS의 이러한 일방적인 조치가 알려지자마자 제일 먼저 나선 것은 기자도, 평론가도 아닌 뮤지션들, 그것도 후진 양성 등으로 소위 '먹고 살만한' 뮤지션들이었습니다.


특히 이번 <공감을 지켜주세요>의 아이디어를 먼저 제시한 사람은 베이시스트 최은창 씨입니다. 그는 자신의 SNS 페이지에 이와 같은 공연에 대한 의지를 알리고 재빠르게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구체적인 결과물을 구현해냈습니다. 오는 일요일과 돌아오는 월요일인 12일과 13일(자세한 일정은 포스터 참조) 홍대 공연장 벨로주에서 공연을 갖습니다. 특히 지난 해 <올해의 헬로루키> 최종결선에서 대상의 영예를 거머쥔 락큰롤라디오, EBS공감이 아니면 대중 매체의 선택을 받을 기회를 쉽게 찾을 수 없는 재즈 분야의 뮤지션들이 무대를 꾸밉니다.


사실 이번 공연은 음악적인 측면 외에도 몇 가지 측면에서 성공하는 해외 캠페인과 프로젝트의 진행 절차를 닮아 있습니다.


첫째, 상황에 대한 판단이 무척 빨랐습니다. 사안의 심각성을 주저하지 않고 받아들였고, 행동의 필요성을 빨리 자각한 것입니다.


둘째, 과제 수행의 과정이 효율적으로 설정됐습니다. 최은창 씨를 비롯한 공연에 뜻을 같이하는 뮤지션들은 이 공연이 성사되기 위해 각 분야의 롤을 맡을 사람을 빨리 구했고, 특히 미디어를 통해 알려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비록 많은 주목을 받는 시상 기구는 아니지만 평론가와 기자들로 구성된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회에 재빨리 보도자료를 부탁한 것은 스마트한 전략이었습니다.


셋째, 좋은 뜻과 좋은 동지들의 만남이 적어도 좋은 마무리로 연결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로 기능할 수 있는 '수익금 기부'를 천명한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공연은 수익 주체가 애매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한 위험을 빨리 제거하고 조금이라도 문제의 본질이 흐려지기 전에 수익의 사용처를 빨리 결정한 것입니다.


이러한 점을 볼 때 공연 자체의 성과에 대해서는 비교적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다만 이 공연이 성공한 소셜 캠페인이 되려면 EBS가 취한 합리적이지 못하고 부당한 조치에 대한 어떤 압박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광고 및 공익 캠페인의 정석이기도 한 덕목이죠.


여기에 대해선 한 가지 예시할 부분이 있습니다. 몇 년 전 노르웨이의 한 광고업체는 유전자 조작 및 호르몬 이상을 야기하는 화학물질 첨가 화장품에 대한 정보 수집 앱을 개발한 바 있습니다. 앱의 런칭 전에 페이스북 페이지를 개설해 대학생들에게 상품명과 성분을 게시하는 이벤트를 가졌고 이것이 앱의 출시 이후에도 진행됐죠. 이 앱은 그 해 노르웨이에서 다운로드된 전체 앱 중에서 25%의 비율을 차지했습니다. 화장품 회사들에게는 엄청난 압력이 되는 수치죠.


마찬가지로 이번 공연이 성공적으로 치러진다 해도 그것만으로는 EBS의 경영권자들을 압박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아니 오히려 낭만적인 생각이겠죠. 하지만 좀 더 자극적이고 직접적인 부분을 이 공연 이후에 건드릴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전국 언론노조는 이번 사태를 EBS 교재와 총판 간의 담합(총판에 대한 일종의 특혜 시혜)으로 생긴 손해, 그리고 그것을 엉뚱한 프로그램의 희생으로 메우려는 의도로 규정하고 규탄한 바 있습니다. 타당성 있죠. 만약 이 공연이 연속성을 갖고 진행된다면 다음 번 공연의 테마와 타겟을 이 문제로 겨누고 그에 관한 페이지를 개설하는 방법도 고려해볼만 하지 않을까요.


여하튼 이렇게 포스터가 나왔다는 것, 그리고 그 프로세스가 이토록 간명하면서도 기민하다는 것 자체가 씬이 질적으로 어느 정도는 성장한 면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거듭 이 질적 성장에 <스페이스, 공감>의 공이 컸습니다. 결국 순리적인 보은인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