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서 미처 발견되지 않은(혹 그 주변의 원주민들끼리만 서로 알고 있는) 망망대해의 어느 작은 섬을 소개하는 느낌이다. 그만큼 명상 음악은 아직도 세상의 음악적 미개척지로 남아 있다. 실용성과 사업적 의도에서 접근한다면 웰빙 혹은 힐링을 위한 수단에 머무르겠지만, 보다 음악적인 실험과 탐미주의로 접근한다면 흥미로운 악기론이자 창의적 예술의 재료로 거듭날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더불어 이것은 신경심리학적, 의학적 접근이 유의미한 과학의 영역이자, 'Zen'(불교의 선())에 기초한 종교적 철학의 영역이기도 하다. 음악, 과학, 철학을 세 꼭지점으로 하는 삼각형의 무게중심에 바로 명상 음악(meditation music)이란 장르가 살아 숨쉬고 있다. 지금, 이 섬으로의 탐험을 시작한다.


글_송윤규




스티븐 할펀(Steven Halpern) "Stargate - Invocation"

 

스티븐 할펀(Steven Halpern) 1970년대 중반 미국의 뉴에이지 음악의 대중화를 주도한 인물로 향후 휴식(relaxation)과 사운드 힐링을 목적으로 한 음악의 창작에 깊은 영감을 받아 동양의 민속 악기 및 EP(electric piano)를 활용한 미니멀리즘(minimalism) 음악을 만들어 오고 있는 명상 음악의 선구적인 뮤지션이다. 그를 먼저 언급한 것은 명상 음악이 그 자체로 독자적 가치를 지닐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에 유망한 답을 제시한 그의 작품을 칼럼의 초반에 상징적으로 소개하기 위함이다.

 

위 음악을 우선 들어보자. 초반에 사인파(sine wave) 같은 음색이 출현하는데 그것은 크리스탈 주발(crystal bowl)이라는 악기의 가장자리(rim)를 고무공 막대로 문지르며 돌릴 때 나는 공명음으로서, 리스너의 귀를 타고 관자놀이 위 머리 속 뒷 공간을 부드럽게 조이듯이 울리는 느낌을 자아낸다. 이후 나오는 수도승 같은 남자의 목소리의 피치는 Ab2인데 인간이 가장 편안함을 느끼기 쉬운 주파수 대역 100Hz에 아주 가까이 맞닿아 있다. 경이롭게도, 그것은 주발이 위로 내는 Eb 음과도 기술적으로 완전 5(perfect 5th)를 이룬다. 완전 5도는 음정 중에서 가장 완벽한 협화 음정으로 3:2의 비율은 황금 비율( 1.618:1)에 가장 근접해 있기 때문이다. 이후 5음계(pentatonic scale)로 오르내린 옴 챈팅(om chanting)의 결과물은 리스너로 하여금 처음 Ab2 피치를 1도 음(tonic)으로 인식하게 하여 사운드적 안정감을 음악적으로도 더욱 강화한다. 여기에 미니멀리즘의 편곡 위에서 템포도, 마디도, 베이스도 없는 열린 공간은 어떠한 강박도 없는 자유로움을 가능케 한다. (앞서 그래비티(Gravity) 스코어 리뷰에서 이런 루바토(rubato: 임의 템포) 음악의 형상을 가리켜 '무중력'이라 칭한 바 있다.) 그냥 무드 음악의 한 하위 장르로서 듣고 넘길지 모를 명상 음악에 이런 사려 깊은 요소들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면 명상 음악만이 지닌 장르적 가치에 대해서 새로운 기대가 생기지 않는가?



명상 음악이란 무엇인가

 

명상 음악을 음악의 한 장르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광의적 정의가 아닌, 독자적 특성을 잘 살피기 위한 보다 구체적인 정의가 중요하다. 과연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명상일까?

 

명상의 주체는 아티스트라기보다 리스너이기에 이 장르는 태생적으로 기능성을 띤다. 리스너는 명상 음악을 들으며 뮤지션(혹은 음악치료사)의 표현과 의도에 주목하기보다는, 음악의 자극(stimulus)으로부터 자신이 받을 직접적인 반응(response)에 전적인 기대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자면, 명상 음악의 본질을 탐구하고 체화하여 밖으로 표출한 뮤지션의 작가주의가 리스너에게는 고스란히 자신이 반응해야 할 대상(음악)으로 받아들여지므로, 이는 뮤지션과 리스너가 예술을 대하는 서로 다른 관점이 하나로 자연스럽게 통합되는 획기적인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즉 뮤지션이 명상 음악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자신의 음악으로 활용하느냐에 따라 서로가 'win-win'할 수 있는 길이 얼마든지 열려 있다는 이야기다.

 

다음으로, 명상 음악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위한 명상인가? 단순하게 심신의 안정을 꾀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으로는 그다지 생산성이 없다. 특정한 음악, 혹은 소리를 들을 때 인간이 반응하는 메커니즘에는 뇌파 및 교감/부교감신경으로의 전달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 차크라(chakra)에 입각한 해석이 있다. 무엇이 여러분의 흥미를 더 이끄는가? 커버 사진에 이미 올린 이미지가 실은 이번 편의 이야기에 대한 복선이었다. 뇌파와 신경에 얽힌 이야기는 추후에 다루고, 차크라 명상에 대해 살펴보도록 한다.



인간 영혼의 에너지를 다루는 일곱 개의 관문, 차크라 센터(chakra centers)

 

차크라는 사전적 해석에 따르면 산스크리트어로 바퀴, 원반을 의미하며 인간 정신의 에너지가 집결되는 몸의 일곱 군데 중심이다. 명상 음악은 그 차크라를 일깨우는 기능성을 암시하고 있을 때 독자적 예술성을 발휘한다. 인간의 가장 내면에 있는 에너지를 건드리기 위해서는 그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해야만 한다. 맨 위의 커버 사진에 표시된 가장 낮은 위치부터 7개 차크라 센터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물라다라(muladhara(root chakra): 항문과 생식기 사이 위치. 생존(survival)을 상징. 현재에 대한 실체적 안정욕. 붉은색)

스바디스타나(swadhisthana(sacral chakra): 척추 끝 꼬리뼈에 위치. (sexuality)을 상징. 성욕. 주황색)

마니푸라(manipura(navel chakra): 배꼽에 위치. 지배력(power)을 상징. 집단 내에서의 자존감, 지배욕. 노란색)

아나하타(anahata(heart chakra): 심장에 위치. 이타심(love)을 상징. 호의. 초록색)

비슈다(vishuddha(throat chakra): 목구멍에 위치. 소통(communication)을 상징. 표현욕. 푸른색)

아즈나(ajna(third eye chakra): 미간의 중심에서 1cm 위에 위치. 직관(intuition)을 상징. 통찰력, 3의 눈. 남색)

사하스라라(sahasrara(crown chakra): 정수리에 위치. 영성(spirituality)을 상징. 세상과 자신에 대한 영적 깨달음. 보라색)



위의 7개의 차크라는 얼핏 매슬로우(Abraham H. Maslow)5단계 욕구 발달 이론을 떠올리게 하지만 두 가지 중요한 차이가 관측된다.

 

첫째, 매슬로우의 이론은 각 단계의 욕구들이 많이 달성될수록 인간적 삶의 만족을 누릴 수 있고 가장 상위의 자아실현의 욕구를 달성할 확률이 높아지는 반면에, 차크라는 지나친(over-active) 에너지는 부족한(under-active) 에너지와 마찬가지로 역효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물라다라의 차크라 센터를 여는 것으로부터 안정적 현실감을 얻을 수 있으나, 그것이 지나칠 경우 물질에 집착하는(materialistic) 인간이 되고, 사하스라라의 차크라 센터를 열면 세상과 자신을 꿰뚫는 영적 지혜를 얻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자신의 몸이 원하는 욕구를 무시하게 되어 정신과 육체가 분리되는 극단적 상황을 맞이한다.

 

둘째, 차크라는 욕구 발달 이론과는 달리 '단계적 서열'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표면상으로는 사하스라라와 아즈나가 성자의 이데아적 정신 영역에 비견되고 물라다라와 스바디스타나가 인간의 본능적 생(물욕)과 성(성욕)에 충실한 세속적 실체의 에너지로 보일지라도, 차크라는 그렇게 멀게 느껴지는 대척점에 위치한 가치들조차 모두 한 개인의 동등한 7개의 센터로 파악하고 있다. 이성과 감성 또한 구분은 하되 우열을 나누지 않는 고른 성장을 '조화로운' 인간으로서의 목표로 삼는다는 명상 원리다.


자신의 차크라가 현재 어떻게 열려 있는지 궁금한 독자들은 아래의 링크에서 테스트를 해 보길 바란다.

http://www.eclecticenergies.com/chakras/chakratest.php





차크라를 열기 위한 음악의 과학적 접근, 사운드 테라피…명상음악은 곧 '배려'의 음악

 

그렇다면 차크라를 열기 위해 명상 음악이 갖추어야 할 요소와 방향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뮤직 테라피(music therapy: 음악 치료)라는 용어를 많은 이들이 들어보았을 줄로 안다. 한국에는 아직 매우 소수가 존재하나, 미국, 유럽의 서구권에서는 뮤직 테라피를 전공으로 개설한 음대들이 많이 있고 국제 컨퍼런스를 주관하는 커뮤니티 또한 활성화되어 있다. 뮤직 테라피의 커리큘럼은 다른 음대와 마찬가지로 음악 분석과 하모니를 비중 있게 다루지만 실제적으로 뮤직 테라피가 독자적 영역으로서의 빛을 발할 수 있는 분야는 바로 그 안에 속해 있는 사운드 테라피(sound therapy: 소리 치료). 이 분야의 가능성을 인지한 서구권의 일부 학교에선 소리 예술(sonic arts)라는 전공으로 세부적 커리큘럼을 만들기도 한다.

 

사운드 테라피에서 즐겨 사용하는 악기들은 대개 파형이 날카롭지 않은 것을 선호하되, 'amplitude envelope'(연주 직후 시간 변화에 따른 음량 변화의 패턴)을 들여다 보면 대체로 어택(attack)은 짧지만 적절히 강하게 음량이 오르고 디케이(decay: 어택의 감소) 국면 역시 짧지만 서스테인(sustain: 울림의 지속)과 릴리즈(release: 잔향의 사라지는 속도)가 긴 이디오폰(idiophone: 악기 분류법에서 현과 가죽이 아닌 재질에서 마찰로 울리는 공명음을 내는 악기류)들이 보통이다. 사용 악기로는 티벳의 불교 의식에서 사용되는 크리스탈 주발(crystal bowl), 티벳 및 네팔 지역의 민속 악기로서-실로 연결된 작은 두 공(gong)을 서로 부딪치게 해 맑고 가는 종소리를 내는 팅샤(tingsha, 아래 사진), 프랑스 국경의 피레네 산맥에서 만들어진-오르골 느낌의 차임 소리를 내는 자피어차임(zaphir chime), 각종 쉐이커 등이 있다.






이러한 음색이 활용되는 예는 위의 사운드 테라피 비디오에서 잘 드러나 있다. 화면을 보면 테라피스트(therapist)는 환자(리스너를 환자로 묘사해야 하는 이 상황은 자못 진풍경이다.)의 닫힌 차크라를 열기 위해 크리스탈 주발과 바오밥 계통의 쉐이커, 휘파람을 활용하고 있는데, 주발도 첫 인트로만 제외하고는 B F# 피치가 조화롭게 오가면서 완전 5도를 그리고 있다. 휘파람에서 쓰인 세 가지 피치 간 음정도 완전 5도와 완전 4(완전 5도 다음으로 테라피스트에게 선호되는 협화 음정) 뿐이다. 쉐이커 연주가 환자의 일곱 차크라를 두루 지나지만 각각 심장과 배꼽 쪽의 아나하타와 마니푸라 앞에서 가장 공명을 가하는 모습으로 볼 때 테라피스트는 환자의 어떤 냉정한 기운과 자존감이 부족한 소극적 성향을 치유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거기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가장 안정감을 주는 원초의 색 녹색이 벽에 도색된 것은 리스너를 위한 또 다른 차원의 시각적 배려다. 명상 음악으로의 여행을 떠날 준비는 차분하고 섬세할수록 서로에게 만족을 안겨주는 법이다. 명상 음악은 모름지기 배려의 음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