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뮤직 컬럼에 실렸던 고 서병후 선생의 프로필 이미지.



단 하루지만 새 해를 살고 떠나다

 

서병후. 근대 이후 한국에서, 대중음악 컬럼이라는 영역의 실질적 선구자 역할을 한 그가 향년 72세로 영면했다. 고인인 암투병 중이었다는 것은 꽤 알려진 일이었다. 빈소는 서울 공릉동 원자력병원 장례식장이며 발인은 월요일인 3 9 30분으로 알려졌다.

 

이 공간을 빌어 고백건대, 1개월 전쯤 타이거JK의 소속사에 연락했다가 그가 심히 위독하다는 사실을 전해들었다. 그러나 본인과 가족들이 언론에 노출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기자 근성이 없어서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땅에서 음악글쟁이들, 그리고 넓게는 대중음악 컨텐츠 산업 관계자들은 모두 많건 적건 그에게 빚을 진 후학들이다. 비루한 필력의 에디터 역시 그러하다.

 

그 분을 한 번도 찾아뵙지 못한 것은 빚을 하나 더한다. 미미한 필자이지만 핫뮤직에 처음 글을 썼던 2004 1월호부터 몇 달간 고인이 의미와 무게감 있는 컬럼을 썼다. 조금만 더 손을 뻗었으면 짧은 시간이나마 뵐 수 있었을 테지만, 다만 때늦어 한탄할 뿐이다. 입으로 티베트 불교와 차마고도를 찬탄하면서 국내에 드문 티베트 금강승 불교 권위자인 그를 찾아 가르침을 청하지 못했던 것도 통탄할 게으름의 소치다.

 

하지만 지난 해 몸담았던 음악전문매체 ‘STUDIO24’ 2013 3월호 특집기사 대한민국에서 대중음악비평가로 살기에서, 졸문이나마 서병후론()’으로 고인의 공적과 후배들이 진 빚을 짚었다는 사실로 떠나신 대선배에게 변명하고자 한다. 거기 실었던 내용과 지면 관계로 조금 줄였던 개인적 감상을 추려 본다.

 

 

즐거운 삶이 좋은 글쓰기를 만든다

 

봐 주는 이 하나 없어도 완성도 때문에 자책과 자괴감을 자청하는 이들이 아마도 비평가들이 아닐까 싶다. 사실 나중에 주화입마의 지경에 이르러 쓰는 글마다 꼬이고 결국은 필력이 사망에 이르는 비참한 경우는 바로 과다한 소명의식, 혹은 정반대로 자기가 선 자리에 대한 인식의 처절한 부재가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단언하긴 어렵지만 글쓰기를 즐기지 못하게 된 경우의 참사가 아닐까.

 

서병후가 후학들에게 남긴 재산은 바로 즐거운 삶이다. 단순히 취생몽사하는 무리들과의 어울림이 아니라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여러 가지 감각에 몸을 맡기는 관능적 구도의 삶을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0년대 초반 그는 금강승 불교 신자들로부터왜 여가수가 유두를 드러내는(재닛 잭슨의 니플게이트’) 선정적인 장을 글쓰기의 대상으로 삼는가하는 항의를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이에 그는 영화는 탱화나 불상 앞의 명상 효과와 같다는 키엔체 린포체의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키엔체 린포체는 키엔체 노르부라는 이름으로 영화감독으로도 활동하는 티베트 불교의 큰 스승. 또한 서병후는 2004년 핫뮤직에 기고한 ‘’니플게이트와 그래미상 그리고 티벳불교라는 컬럼에서 인간의 욕망과 번뇌를 연료로 삼는 탄트라 불교의 수행 방편을 통해 연예작품을 보아야 한다고 설파한 바 있다. 석가모니 붓다가 세상은 아름답고 인간의 목숨은 달콤하다고 마지막 여행 중에 설한 바와 통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기억에 남는 고인의 가르침으로 <플레이보이>지에 대한 언급을 꼽을 수 있다. 대상을 다루는 감각이 즉물적이지 않고 인문학적인 깊이를 통해 질 높은 유머를 담아내는 문체, 에디토리얼 디자인 면에서 편견을 버리고 연구해 볼만한 매체임을 언급한 바 있다. 결국 페이소스가 글쓰기에 입체성과 깊이를 부여함을 지적한 것이다.

 




한국의 음악 비평, 약한 후학들을 굽어살피소서

 

그는 권위자였지만 권위의식을 가진 인물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압도적인 이력은 보는 이들을 분명 무릎꿇게 하는 면면이 있다. 한국의 대중음악 매거진 붐을 주도한 인물이고 담론의 장을 산업화시켜 많은 이들에게 의미 있는 일자리가 돌아가도록 했다. 그는 기자건 비평가건 제작자건 어느 쪽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이 아니라 모두 각자의 즐거움을 통해 공생하길 바랐다.

 

하지만 지금 한국 대중음악에는 강자와 약자가 분명하다. 특히 비평가의 운명은 비루함 그 자체다. 절대 그럴 수 없는 것이지만 저널리즘의 아류 정도로 여겨지고 있다. 불안한 고용상황 탓으로 소속에 대한 갈망이 큰 사회여서인지 음악 페스티벌에 신원 확실한(?) 패션지 기자는 초대를 받아도 음악평론가는 초대받지 못하는 시대다. 비평은 비난으로 오인되기 일쑤고 보상 따위 바라지도 않은 정성 어린 작업은 대중을 무시하는 오만함 쯤으로 절하된다. 많은 기획사들은 자신들에게 호의적인 연구서제출하는 컬럼니스트를 초빙하는 모습을 과시한다. 이를 통해 비평은 아예 설 자리를 잃어 가고 있다.

 

물론 이토록이나 파편화된 시대에, 가능한 것은 자구책일 수밖에 없다. 연대는 어렵고 유대는 막연하다. 개인 미디어에 대한 핑크빛 전망과 예찬은 결국 능력에 맞는 급여를 지급하기 싫은 언론사들이 개별 필자를 분점취급하는 태도라는 의심이 가시지 않는다.

 

그러니 후배들 중에서 미약한 자들은 기도할 수밖에 없다. 하늘로 떠나신 선배님. 너무 떠나지 마시고 굽어살펴주소서. 몸의 감각기관을 다 열었을 때 느껴지는 것이 고통뿐이어서는, 당신의 뜻을 새기며 일하기가 어렵습니다. 부디 지켜주실 것을 믿습니다. 이 세상의 새 해를 하루라도 살고 떠나신 뜻이 하나의 약속이라 믿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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