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는 나비 꿈을 꾼 뒤 비로소 세상의 주객을 구분하는 인간중심적 사고를 넘어선 바 있다.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에서 예술 지상주의를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진 스트릭랜드는 남태평양의 외딴 섬에서 나병으로 온몸이 썩고 시력마저 잃은 극한의 고통 속에서 세상에 다시 없을 벽화를 걸작으로 그려내고 최후를 맞는다. 자연의 감춰진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 아름답고 공포스럽기 짝이 없는 비밀을 찾아낸 인간만이 해낼 수 있던 작품, 그리고 그 진리를 위해 바친 숭고한 정열. '물아일체'는 실로 예술가들의 꿈이요, 자연은 곧 인류의 고향이다.



사운드 테라피의 근원, 자연의 소리

 

자연의 원시적 아름다움과 공포(편의상 구분하였지만 자연의 공포는 분명 아름다움을 내포한다)는 인류가 오늘날의 거대한 문명을 일으키는 데 중요한 상상력의 원천, 즉 영감이 되었다. 그리고 자연의 소리를 모티브로 하여 인류는 언어뿐만 아니라 수많은 악기와 음악을 발전시켜 왔다. 사람이 자연의 소리에 가장 원초적인 편안함을 느끼는 이유는 자연으로부터 인간의 60조가 넘는 모든 세포가 태동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창의적 직관이 발달한 음악가는 그래서 대자연의 기운을 닮은 음악을 동경하고 만든다. 본연의 인간다움을 회복하고 삶의 영감을 깨닫기 위한 사운드 테라피sound therapy가 또 다른 열쇠를 쥐고 있는 곳이 있다면 그곳은 바로 자연이며, 자연의 소리는 사운드 테라피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모티브가 되고 있다.



자연의 소리를 닮고 싶은 악기들, 그 꿈을 경영 철학으로 만든 사람들





드러머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드럼을 시작하면서 장만했던 패드와 거기에 쓰인 메이커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리모Remo.' 사운드 테라피에 남다른 관심이 있는 이 회사는 사실 그냥 드럼 제조업체가 아니다. 'Health Rhythms'라는 하위 연구 부서를 두어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 및 삶의 희망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위한 각종 체계적인 워크샵과 레크리에이션, 외부 테라피스트들 간 뮤직 테라피 컨퍼런스 등을 통해 미국 지역사회의 대표적 사운드 테라피 기업으로 활동 중에 있다. 워크샵을 위해 직접 개발하고 제공하는 악기가 모두 자사에서 개발한 퍼커션이니 제품 홍보와 동시에 음악계의 발전, 더 나아가 인류애, 공익까지 고려하는 경영 철학이 아닐 수 없다.


헬스 리듬Health Rhythms의 매니저인 앨리사 재니Alyssa Janney의 이야기에 따르면, 처음에 그는 이벤트 회사 버거퀸을 다니며 커리어를 쌓았지만, 대학에서 뮤직 테라피를 계속 전공하면서 소리와 인간 심리와의 역학 관계에 이후의 자신의 미래를 걸었다. '창의적 환경 속에 자신을 담그는 것(Immerse yourself in a creative environment)'이 세상을 빛나게 하는 밑거름이라는 일념 하에 그는 리모의 경영 철학과 뮤직 테라피스트로서의 소명 의식에 큰 애정을 보이고 있다. 리모는 초기에는 드럼 패드로 명성을 쌓았지만 에그 쉐이커egg shaker(탁구공만한 크기의 구에 고운 모래를 넣은 휴대용 쉐이커. 재니는 에그 쉐이커라는 규격화된 악기와 명칭을 리모가 처음 만들었다고 한다)를 영화 음악의 오케스트라 악기 편성(instrumentation) 중 하나로 대중화한 공적이 있다. 특히 '22인치의 규격화된' 오션 드럼은 그가 최초로 만들기도 했다. 유치원과 초등학교에는 다양한 과일 모양의 쉐이커fruit shakers, 오션 드럼, 트라이앵글 등을 지급하고 레크리에이션을 통해 어린이들에게 자연을 닮은 소리를 듣는 훈련의 기회를 마련한다. 아이들에게 장난감인 악기들이 실제로는 사운드 테라피의 세계로 쉽게 다가가게 하는 토대인 것이다. 그런 아이들의 간지러운 장난으로부터 창의의 새싹은 움트기 마련이다(창의에 속성이 있다면 간질간질한 깃털과 같은 류일 터다).


오션 드럼은, 위의 비디오 클립에서 보듯, 구슬 모양의 알갱이를 넓적한 북 안에 넣어 '바다의 파도 소리'를 미끄러지듯 표현할 수 있게 한 뮤직 테라피스트 관점의 악기다. 한쪽 면은 가죽과 테로 둘러 멤브라노폰membranophone(악기 분류법 중 하나로 가죽 재질의 막을 두드리거나 문질러 소리를 내는 원리의 악기)의 기본 퍼커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면서도, 이디오폰idiophone(막을 제외한 재질의 마찰에 의한 공명음을 발성의 원리로 삼는 악기)으로서 짧은 호흡의 쉐이커 기능과 긴 호흡의 슬라이드(물론 이 악기의 독창적 가치는 이것이다)를 동시에 활용할 수 있는 멀티 태스킹 퍼커션이라 볼 수 있겠다. 보다 폭넓은 시각에서 오션 드럼이 규격화되기 전 이 악기의 기원지는 네팔로 거슬러 올라간다. 히말라야 산맥의 육지 속에 온통 둘러싸여 있던 네팔인들은 가까이서는 결코 볼 수 없던 바다에 대한 동경을 바다의 소리를 흉내내는 프레임 드럼frame drum(전세계적으로 널리 쓰이지만 특히 중동 지방에서 많이 발견되며 손으로 가볍게 들어 손바닥과 손가락 끝, 혹 막대로 연주하는 퍼커션류의 총칭. 고대 이집트부터 사용된 탬버린, 터키의 타르 등이 모두 프레임 드럼에 해당)의 형태로 간직하고 있었고 그것이 오늘날 리모에 의해 하나의 독립된 악기로서 구체화된 것이다.





인간이 악기를 통해 자연의 소리를 닮으려 했던 노력의 산실은 에그 쉐이커나 오션 드럼 외에도 부드러운 빗소리를 흉내낸 레인스틱rainstick(위 사진), 바람의 불규칙한 숨결을 청각화한 윈드 차임wind chime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아마 이쯤에서 눈치 빠른 독자라면 어떤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사운드 테라피적 접근에서 파생된 악기들은 사실상 월드 뮤직의 연주를 위해 사용되는 에스닉 계열의 악기들의 범주 안에 모두 속해 있다. 명상 음악과 월드 뮤직의 음악관이 기본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자연으로 돌아가서' 관습화된 사고와 이해득실이 아닌 인간 본연의 선()과 이성의 회복을 주창한 루소의 자연주의와 일맥상통하고 있다. 명상 음악의 정수에는 자연주의적 가치관을 반영한 음악과 사운드를 통해 인간 본성이 자연으로의 회귀에 이르고 태초의 깨끗한 자아로 다시 설 수 있게끔 돕는 궁극적 의미가 암시되어 있다.



의도되지 않은 자연의 소리가 온 정열을 바친 예술가의 의도된 음악보다 더 아름답다면…


고해상도의 생동감 넘치는 자연의 소리


악기의 개발과 연주 및 음악의 표현에서 당대의 음악가들은 자연을 동경하고 그 세계로부터 나오는 창의를 닮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런데 자연의 소리가 그 자체로 인간의 마음을 더없이 평안하게 사로잡는다면, 음악가는 왜 직접적으로 그 소리를 사용하기보다 오션 드럼으로, 혹은 다른 악기로 파도 소리를 표현할 때에 비로소 음악적이라고 생각할까? 가령, 드뷔시Debussy시링스Syrinx가 강가의 갈대로 변한 요정 시링스의 형상을 플룻 솔로로 표현한 것은 초현실적 이미지이기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겠지만, 교향곡 바다(La Mer)”와 같은 성격의 표제음악이라면 실제 바다의 형이하학적 소리를 음악에 삽입했을 때 더욱 제재에 부합하면서도 리스너에게 큰 감흥을 일으키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이 부분에는 명상 음악의 근원적 딜레마가 숨어 있다. 음악을 듣는 훈련의 정도에 따라 다를 수 있으나 우리가 흔히 하는 '음악적이다'라는 말 속에는 멜로디, 하모니, 리듬과 같은 기술적 요소가 내포되어 있으며, 또 다른 관념적 측면으로는 음악의 표현 과정에서 중의, 비유, 역설, 모순 등이 예술미를 발현하는수사적 가공을 통한 해석들을 함께 고려하고 있다. 다시 말해, 자연의 소리에 인간이 극도의 평안함을 느낀다 하더라도 아무런 수사적 가공이나 음악적 작법이 들어있지 않은 노골적인 자연의 소리의 캡처링을 가지고서 그것을 명상 음악의 음악성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자연의 의도되지 않은, 아무런 작법과 수사가 담겨 있지 않은 소리가 음악성을 가지지 못한다는 기조에 대해 존 케이지John Cage 등의 포스트 모더니즘 음악가들은 반대의 의견을 표출하였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추후에 다룰 예정이다).

 

만약 캡처링된 자연의 소리가 방법론적이나 결과적으로 특별한 희소성을 지닌다면 그 자체로서는 독자적 미학을 지니게 되지만 그것 또한 음악적 예술미와는 별개의 미학이다. 일례로 스티브 할펀Steve Halpern의 피라미드 내부 녹음 시도가 그렇다. 지난 명상 음악의 첫 칼럼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뮤지션의 표현과 의도보다 리스너의 명상적 기능에 태생적으로 초점이 맞춰지는 장르적 특성 때문에 필자와 같은 기조의 음악가들은 명상 음악에 자연주의적 이끌림을 느끼면서도, 리스너의 평안함과 작가주의 관점의 음악성을 동시에 가져갈 수 있는 최적의 밸런스에 대해 여타 장르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많은 고민을 할 수 밖에 없다(물론 이 난제를 해결할 때 그것은 획기적인 기회가 될 것이다). 온 정열을 바친 음악가의 의도된 명상 음악이 의도되지 않은 자연의 소리보다어떤 면으로라도더 좋을 수 없다면, 음악가는 좌절에 빠질 것이요, 창작에 음악적 동기부여를 느낄 수 없지 않겠는가.



포퓰러리즘에 타의적으로 편승되어 있는 한국 명상 음악이 나아가야 할 길

 

더욱이 예술의 담론을 떠나서 바라본 오늘날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음악가의 철학적 고증과 고심이 작품 속에 전혀 녹아들지 않은 채 대중의 말초적 감성을 위한다는 구실로, 명상이라는 기능적 결과만 그럴듯하면 된다는 구실로 천민 자본주의와 결부된 작품관의, 수박 겉핥기식 힐링 음악이 명상 음악의 카테고리에서 난무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철학과 음악성을 두루 갖춘 명상 음악의 새로운 창작 음반이 거의 존재하지 않기에, '상업적으로 안전한' 기존의 명곡들에 기능성이란 명제를 부여한 태교 음악, 수면 음악 등의 컴필레이션 음반만이 오직 명상 음악이란 이름으로 각광을 받으며 본 장르의 잠재적 가치를 알게 모르게 평가절하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매스 미디어의 지배에 크게 잠식되어 있는 한국 음악계는, 현재의 원인을 대중의 탓으로 돌리고 그들의 눈치를 보기보다, 명상 음악과 같은 소수의 장르를 주도적으로 개척해 가는 뮤지션들의 자발적 혁신이 먼저 많아져야 장르 편향적 선택지에서 중장기적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포퓰러리즘popularism의 선입견에서 탈피해 새로운 창의와 장인정신에 대한 다름의 가치를 높고 귀하게 보아줄 수 있는 미디어와 비평가들의 소신 있는 안목 또한 명상 음악과 같은 소수 음악의 미래를 위해 매우 소중한 자양분이 아닐 수 없다.

 

위로할 단서가 남아 있다면, 인류의 긴 음악사를 놓고 보았을 때 명상 음악의 잠재성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전세계적으로도 아직 초기 단계에 있다. 본격적인 체계가 잡히기 전이기에 다른 장르에 비해 더욱 빠른 예술적, 문화적 변혁을 이뤄낼 수도 있다는 의미다. 앞선 비디오에서와 같은 고해상도의 자연의 소리를 깨끗하고 선명하게 디지털로 녹음하여 재생할 수 있게 된 시대적 혜택은 음악사에서 최대한으로 보아도 고작 35년 내에 불과하다(최초의 디지털 리코딩 앨범은 1979년부터 시작됐다). 1993년부터 한국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던 700 전화 서비스를 통해 감상하던 통화 음질의 자연의 소리가 단지 약 20년 만에 이런 수준까지 발전한 것을 떠올려 본다면, 당연한 혜택이 아닌 눈부신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사운드 테라피스트나 명상 음악가들이 음악 시장의 다변화된 확장을 위해 노력을 경주해야 할 소명 의식을 느낀다면, 이미 태생 그 자체로 경이로운 자연의 소리를 이긴다는 식의 접근보다는, 그것을 아티스트적 체화를 통해 독창적 가치를 실현하는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실험하는 접근이 가장 생산적일 것이다. 앞서 소개한 리모의 오션 드럼 개발은 그러한 구체적 노력의 일환이며, 음악관이 동일한 순수 명상 음악과 월드 뮤직의 결합 또한 뮤지션의 고충을 덜어줄 수 있는 효율적 방편 중 하나일 것으로 여겨진다. | 송윤규 surinmusic@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