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출처. 최고은 페이스북.


최고은 그녀와 우리, 리얼의 세계로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 2014 참석하는 그녀에게 뒤늦은 축하를

 

글·사진 만득


 

지난 해 7월을 마지막으로 내가 몸담았던 대중음악지 <STUDIO24> 기약 없는 휴간에 들어갔다. 결정은 7 중에 이루어졌는데 인쇄소로 데이터를 넘기는 최종마감이 25일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실질적인 취재 업무는 6월에 종료된 . 7월의 주된 업무는 취재처나 협력업체에 휴간 사실을 알리고 양해를 구하는 정도였기 때문이다.

 

사실 대한민국에서 3000 넘는 오프라인 매체가 태어나고 90% 이르는 숫자의 매체가 해에 사라진다. 대략 하루에 10 가까이 태어나고 8 정도 매체가 사라지는 셈이다. 생계가 걱정이 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한편으로 그것이 내가 세상에 대단한 죄를 짓는다거나 하는 일이 아니라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인터뷰를 포함해 어떤 형태로든만남 기회가 줄어들었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었다. 인류가 세계의 진면모로부터 격리된 것이 문자의 발명 이후라면 쓰는 작업은 그야말로 스펙터클의 형무소에서 치르는 노역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인터뷰는 재소자들에게 주어지는 귀휴나 면회와도 같은 것이 아닐까. 특히 나의 인터뷰이와 취재원들은 음악인들로, 그들의 목소리와 노래를 통해 보고 들을 것을 기록함으로써 어두운 글자엔 다소간이나마 빛이 깃들었다.

 

마지막 책의 마감을 쳤던’ 6 , 통의동에 위치한 사진위주 류가헌에서 최고은의 EP [Real] 발매 쇼케이스가 있었다. 어쿠스틱 기타를 중심으로 편성의 곡이 쏟아져나오는 시대지만 최고은의 음악은 대세와는 전혀 별개로 존재한다는 생각에 특별히 조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사운드와 가사에는 언어를 넘어서는 세상의 면모를 보려는 노력이 있었다. 최고은은 일부러 익숙한 공간인 한국을 떠나 낯선 나라에서, 음악에는 보편적이지 않은 공간을 찾아 연주하고 부른 것을 담아 왔다고 했다. 보일러실에서 연주를 하고 세탁 머신들을 관객삼아 노래불렀다. 바닷가에서 물과 땅이 부딪쳐 내는 소리가 기타 소리를 잠식해도 그것을 따로이 걷어내지 않았고, 추운 바람에 곱은 손이 현을 장악하지 못해 나는 소리도 애써 교정한 흔적이 없었다.

 




류가헌에서의 쇼케이스가 그의 음악적 면모 전반을 설명해줄 수는 없었겠지만, 목소리나 악기, 멜로디, 리듬 일체의 언어적인 것들을 넘어서려는 최고은 음악에 대한 소개로서는 충분했다. 음악이 세계를 말한다는 것은 U2처럼 정치적 현장을 직접 소재로 삼는 것만을 말하지 않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최고은의 음악이 서정이라는 구동방식을 따른다는 . 서정은 인간의 정서를 풀어내는 것으로 자체가 비언어적이다. 서정이 서사와 다른 점은 실제 세계에 대한 인간 식의 번역이라면 서정은 자신의 생물학적 틀을 통해 반영하는 것이다. 서정이 문제 없이 기능한다면 인간이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일원임을 아주 날것스럽게받아들일 때의 모습과 주변 세계의 관계가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이다. 이는 미술과 음악 여러 분야에서 공히 적용되는 원리다. 고른 기타의 아르페지오 위로 흐르는 최고은의 목소리를 들으면 우리에게 비로소 세계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참상까지를 완벽하게 보여 있는가를 증명한다. 아름다운 숲과 바다가 보이면 매단 사람과 가라앉는 배도 보인다. 나뭇잎을 두들기고 지나가는 바람소리와 파도의 성량 위로 자식 잃은 어머니의 울부짖음이 들린다1년의 시간 간격이 있는데도 최고은의 음악을 지금 듣는다는 것은 이러한 일로 다가온다. 밝게 빛나는 기괴한 세계에 눈이 것만 같다.





 

여기 올리는 사진은 거의 1 <STUDIO24> 실리지 못한 기사에 쓰려고 직접 찍어 것이다. 시기를 놓쳐 올리지 못하고 귀한 노래를 들을 있도록 협조해 뮤지션과 공연공간 담당자에 대한 미안함으로 1년을 지냈다. 굳이 숙련도는 보태어 사죄할 바가 아닐 정도다.

 

그러나 늦은 사진이되 다시 나름의 유효함을 얻은 취재결과라고 자위하는 한편 용서를 구하고 싶다. 내가 느꼈던 것이 경험의 폭이 좁은 자가 빠졌던 어리석은 감상은 아니었는지 최고은은 <글래스톤베리Gladstonbury 페스티벌 2014> 공식 초청을 받았다. 물론 그것이 황감한 훈장이라는 뜻은 아니나, 언어가 다르니 영국인들은 최고은의 음악이 언어에 얽매이지 않는 느낌을 우리보다도 직접적으로 느낄 확률이 크다는 점은 부럽다. 아마 최고은이 무대는 어떤 뮤지션의 무대보다도 세계를 선명하게 보여주지 않을까 기대된다.

 

세계는 거듭, ‘리얼 세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