톤 오브 에이지의 2013년 연말 결산 시리즈의 또 하나. [송윤규의 스크린스코어]는 새 해에도 연재를 이어갈 예정이지만, 연말까지 2013년의 영화라고 부를 수 있는 주요 작품들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에 대한 깊이 있는 접근으로 다룰 예정이다.| Tone of Ages



모두에게 짜릿한 하이라이트의 순간, "Now you see me!"


대중들은 흔히 눈에 보이는 것만을 받아들이고 싶어한다. 실체가 있는 것은 본능적으로 의심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가능성보다는 눈 앞에 다가온 결과를 통해 비로소 존재를 믿게 되는 영화 속 대중에 대한 조소, 예술로서의 마술이 세상과의 접점에서 거대한 범죄가 되었을 때 마술의 진실을 뒤쫓는 자와 범죄의 진실을 뒤쫓는 자, 그리고 두 추격자의 또 다른 접점, 마지막 그 안에 숨은 진실을 통해 또 한 번 드러나는 영화 밖 대중(관객)에 대한 조소까지. 이 영화의 작가 정신은 트럼프 카드로 비유하자면 조커(joker)를 연상케 한다.

 

그럼 타이틀 "Now you see me"는 무슨 의미이며 어떤 상황에서 쓰이는 말인가? 마술을 구경하며 사람들은 그 자체의 신비로움이 자아내는 예술미를 탐미하기 보다, 거기 숨은 비결의 속임수를 알아내고 싶어한다. 경험의 체득으로 얻어지는 현실적 상식에서 마술의 보이지 않는 세계는 대중에게 그 자체로 용납되기 어려운 본질이 있다. 그렇기에 그들의 바로 앞에서 "Now you see me!" 마술사가 외치며 실체를 공개하는 순간은 모두에게 짜릿한 하이라이트다. 결국 영화의 타이틀은 이 순간의 스냅샷인 동시에 실체를 통해 존재를 믿는, 그리고 실체를 보여 주어도 트릭을 알지 못하는 대중들을 마음껏 조소하는 마술사(극중 'Four Horsemen')들이 느낄 카타르시스이자, 관객을 향한 감독의 조커(joker)와 같은 시선이기도 한 셈이다.

 

이런 매력적인 소재를 다룬 영화를 음악은 과연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까? 이 글에서는 2013 <그래비티>와 더불어 인상적인 여운을 남겼던 영화음악 <나우 유 씨 미: 마술사기단(Now You See Me)>를 들여다 본다.






40인조 오케스트라를 최후방에서 지휘하는 드럼 세트(drum set)의 파격

 

밴드 음악과는 다르게(밴드 드러머에게는 서글픈 뉘앙스일지 모르겠지만) 오케스트라 영화음악에서 드럼 세트(drum set)의 존재는 그야말로 찬밥 신세다. 드럼 세트 대신에 베이스 드럼, 스내어, 탐탐(tom tom), 라이드 심벌(ride cymbal), 서스펜디드 심벌즈(suspended cymbals: 적절히 맞대고 문질러 크레센도 효과를 내는 심벌즈), 탬버린, 캐스터네츠, 트라이앵글, 우드블럭 등 세트가 해체(breakdown)된 것도 모자라 더 다양한 퍼커션이 준비되어 한 타악기 주자(percussionist)당 보통 1~4개씩의 퍼커션을 맡아 연주한다.

 

그럼 영화음악에서 타악기가 고루 해체되어야 유리한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영화음악은 박자표(time signature)와 템포 변화가 비일비재하다. 스코어상의 박자표가 4/4, 6/8, 12/8이 대부분인 팝과 달리 중간중간 5/4, 7/8, 12/16와 같은 형태의 '오스티나토(ostinato)'로 불리는 부담스런 변주가 심심치 않게 들어간다. 온쉼표가 등장해도 연주자는 좀처럼 마음 놓을 새가 없다. 그래서 이들에겐, 침묵도 분명한 연주다(아래 파트를 보고 저 순간을 호흡하는 공(gong)/심벌 주자의 떨리는 마음을 한번 느껴 보라).


이런 장난 같은 진지함을 작곡가가 고민해야 하는 하위의 이유도 역시 있다. 하나는 비디오와의 싱크(sync)를 맞추기 위해 한 번에 박자를 급변시키는 것보다 점진적으로 빈번하게 변형을 주는 것이 음악의 구조적 일체감을 살리면서도 싱크를 잘 맞출 수 있는 방안이 되기 때문이며, 다른 하나는 액션과 같은 긴박감 넘치는 섹션을 표현하는 데 날이 선(intense) 박자가 불안과 흥분을 효과적으로 조성하기 때문이다.

 

타악기가 해체되어야 좋은 이유 둘째, 음향적으로 스테레오 이미지 연출이 더 용이하다. 영화음악은 일반적으로 'larger-than-life sound'(웅장한 앰비언스의 큰 스케일의 사운드).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데다 프레임 속 세계의 시각적 이미지를 고려하기에 니어 필드(near field)보다는 파 필드(far field) 모니터링이 중시되며 오케스트라 배치에서도 조금이라도 스테레오 이미지를 넓혀주기 위한 타악기의 해체적 배치가 더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셋째는 일반 대중음악보다 구조가 복잡하고 색채가 복합적인 영화음악을 리듬으로 표현하는 것에 대해, 한 드럼 세트 플레이어보다 여러 명의 타악기 주자가 역할을 분담해 자기 파트를 집중적으로 연주할 때 더욱 음감이 민감하면서도 풍부해지기 마련이다.


위의 관점에서 볼 때이 영화의 스코어(score)에는 강렬하게 여타 영화음악과 차별되는 포인트가 생겨난다. 40인조 오케스트라(40-piece orchestra)의 온갖 유니즌(unison: 동음(다른 옥타브 포함)의 중복)과 화성을 달고 이들을 드럼 세트가 뒤에서 대범하게 지휘하고 있는 것이다.


Track 1. "Now You See Me"



폭넓은 악기의 이해, 오케스트라의 원형과 밴드의 컬러를 조화시키다

 

브라이언 타일러(Brian Tyler). 그는 2012 <007 스카이폴(Skyfall)>의 음악을 스코어링했던 베테랑 작곡가 토마스 뉴먼(Thomas Newman)과 더불어 영화음악계에서 새로운 메이저 리거-불가피하게 표현하자면-로 주목받고 있다. 그는 드럼을 자신의 주 악기로 다루지만 퍼커션, 피아노, 기타, 첼로 및 차랑고(charango)와 같은 전통악기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연주 스펙트럼을 자신의 작편곡에 활용한다. 이는 그의 큰 강점이다. 한 사람의 작곡가도 피아노와 기타를 즉흥연주하며 떠올리는 영감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드럼 세트를 타일러 본인이 직접 연주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의 메인 테마(main theme) 스코어는 드럼 세트로 표현할 수 있는 화려함을 다분히 밖으로 꺼내 놓고 있다. 영화음악의 금기사항과도 같았던 필인(fill-in: 드럼의 변주)과 오픈 하이햇(open hi-hat)의 거침없는 연주 진행은 오케스트라가 그를 받쳐 주는 이색적인 광경을 자아낸다. 베이스도 어쿠스틱이 아닌 일렉트릭 베이스를 의도적으로 사용했다. 오케스트라 작법의 원형을 보존하되 드럼과 베이스의 밴드 음악 컬러를 존재감 있게 활용하고 싶다는 의중이다. 직선적인(straight) 스릴러 음악의 원형에서 큰 스케일의 뮤지컬(musical theatre) 색채가 가미된 '쇼 음악'의 튠이 들리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트랙에서 골고루 등장하는 메인 훅에 대한 화성적 연출의 핵심 아이디어도 인상적이다. 1(tonic) 화성의 5도 노트(fifth)를 반음 올려 만든 멜로디와 화성의 증5(augmented 5th) 음정으로 불안감을 자아내더니 그 증5도의 멜로디를 다음엔 화성의 루트음(root note)으로 뒤집어 활용했다. 'I I+ V/I+ iv'의 발상이 스코어 전체를 꿰뚫는 단단한 메인 프레이즈로 자리한 가운데, 드럼 세트뿐 아니라 드럼 루프(drum loop)나 첼레스타(celesta)의 영롱한 음색을 활용한 다양한 버전의 테마 음악이 변칙적으로 반복 활용되며 스코어를 리스너의 뇌리에 각인시키고 있는 것이다. 전체 패턴의 단순함이 이와 같은 노력으로 완전히 해소되었다고 보기엔 뒷심이 다소 부족한 일면이 있으나, 메인 프레이즈에 대한 임팩트가 감상 후에도 충분히 기억될 만한 스코어다. 송윤규 surinmusic@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