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킬레 페스티벌 홈페이지(http://roskilde-festival.dk/band/singleband/jambinai/)



한국 전통악기에 대한 부족한 이해로 시작하는 글인 만큼 잠비나이의 음악에 양식적으로 접근하기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 부끄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 한계는 그들의 음악을 넘어 뜻하지 않게 포스트락이라는 키워드에 대한 유의미한 고민의 계기가 된다. 고맙게도 이 고민들은 몇 가지 흥미로운 질문들을 각주로 달고 있다.



락으로 잠비나이 더듬기

 

잠비나이의 정체성을 국악에 묶으려는 의도는 아니다. 잘 알지도 못하는 것으로 누구를 묶으―응?―랴. 아니 국악에 대한 이해도와 별개의 문제로, 음악 자체에 대한 이해가 단편적인 청자라 할지라도 잠비나이의 음악이 통상 알려져 있는 국악의 이미지와는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퓨전 국악’이라는 명칭은 차라리 무성의함마저 느껴진다.

 

그런 점에서 덴마크 로스킬레(Roskilde) 페스티벌의 2014년도 라인업에 포함된 잠비나이가 포스트락으로 분류된 사실은 새삼 흥미롭다. 물론 국내에서도 이들을 한국형 포스트락이라는 수식어로 부르는 경우도 있지만 아직 많은 대중을 상대하는 매체에서는 이 용어를 사용하기를 꺼리고 있다. 그만큼 이 용어가 낯설기 때문이기도 할 터인데, 포스트락이라는 말에 어느 정도의 이해도를 갖고 있는 매체 관련자의 경우엔 국악을 틀로 한 퓨전 락밴드라는 식으로 에둘러 표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어차피 올해 중반 무렵 잠비나이가 해외 활동을 이어가면서 포스트락이라는 용어는 수면으로 떠오를 것이고, 에둘러 표현하는 것도 한계에 다다를 것이다. 이것이 기표만 남은 마케팅 용어가 되기 전에 어느 정도 가닥을 잡기 위해서,

 

결국 을 어느 정도 정의하는 데서 이야길 시작할 수밖에 없다. 이 글에서는 락의 기원과 속성 모두를 포섭해 정의하는 하나의 키워드로 ‘파국’을 들고자 한다. 전기적 출력과는 다소 다른 사안으로, 어떤 악기가 낼 수 있는 소리 자체든 고정된 세계를 강렬하게 무너뜨리려는 열망에 기반한 것이 락 사운드라는 의미다. 고전음악의 자장에 영향받아 악곡 구성 형식은 혼돈을 정리하는 방향으로 흘러갔을지 몰라도, 사운드 자체만을 놓고 보면 안정된 상태를 거부하는 것이 락적인 사운드 운용이다.

 

 

오동나무의 오버드라이브

 

물론 대중음악에서 사운드에 대한 지식은 과거보다는 훨씬 보편적인 것이 됐다. 서두의 논의만으로도 상당수 독자들은 이 글에서 선택한 파국이라는 정의(혹은 저의)가 일렉트릭 기타의 발전사에 의존하고 있음을 알 것이다. 관습적인 태도라는 지적은 달게 받겠다. 그러나 락 사운드에서 이런 편견이 통용될 만큼의 지분을 가진 일렉트릭 기타의 속성은 잠비나이의 음악을 읽어가는 데 중요한 힌트가 된다.

 

기타 사운드의 발전사에서 중요한 가치는 증폭(amplification)이다. 흔히 앰프와 여러 가지 보조적 증폭장치인 이펙트, 그리고 수음 장치인 픽업의 출력 등의 공적이 언급된다. 그러나 어느 정도 연주의 경험이 있는 이들은 사람의 손과 악기 자체가 만들어내는 강력한 떨림의 가치를 알 수 있다. 기타의 경우 얼마나 현을 강하게 뜯어 줄과 몸체를 울릴 수 있는지가 기본적인 증폭 정도를 결정한다.

 

한데 이 울림을 다소간 구분할 필요가 있다. 공명통이 있는 어쿠스틱 기타의 경우 강하게 연주하면 풍부한 울림으로 인해 중역대가 증폭된다. 흔히 들을 수 있는 락에서의 오버드라이브 사운드와는 차이가 있다. 이와는 반대로 바디가 꽉 찬 나무로 되어 있는 일렉트릭 기타의 경우, 줄을 세게 뜯었을 때 울림이라기보다는 떨림에 가까운 느낌을 준다. 즉 나무 자체가 떨면서 소리를 퉁겨낸다. 이 과정에서 음량은 일정 이상 커지지 않지만 소리의 속성이 다소 바뀐다. 지금이야 속을 일부 파내는 릴리프(relief) 공법을 이용하고 있지만 레스 폴은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시대만 하더라도 속이 꽉 찬 솔리드 바디(통나무)였다. 출력 장치 면에서 지금보다 사정이 좋을 수 없었던 당시에, 레드 제플린의 사운드는 지금 들어봐도 무언가가 뒤집어지는이미지가 있다.

 

이를 잠비나이의 거문고 사운드의 운용에 대한 은유로 읽으면 어떨까. 거문고의 몸체 중 앞쪽을 구성하는 오동나무나 뒷판의 밤나무 모두 목재가 상당히 치밀하고 단단하며 무겁다. 여기에 울림통이 있되 현 쪽으로 개방되어 있지 않다. 자연히 소리는 공간을 돌아서 울리는 공명보다는 악기 전체의 떨림을 통한 것이 된다. 세게 뜯을수록 이는 단순한 울림 이상의 오버드라이브가 발생할 조건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사운드는 곡 안에서 다른 악기, 특히 기타와 맞물리면서 일종의 트윈 기타와 같은 출력을 선보이게 된다. “텅빈 눈동자바라밀다연작에서 시공간이 일그러지는 듯한 감각의 경험은 그야말로 락적인 파국인 셈이다. 어찌 보면 딜레이는 곡의 전체적인 측면에서도 볼 때 상징적인 디스토션이기도 하다.

 

 





포스트그리고

 

잠비나이의 경우 이 거문고 소리에 아날로그적 질감이 강한 딜레이를 건다. 거문고의 가볍지 않은 음색이 유연한 아날로그 딜레이를 만나며 반복―그들의 앨범명에 사용된 차연과 같이 데리다 철학의 주요한 개념이다―과 확장을 거친다.

 

이러면서 자연히 잠비나이의 음악은 기존 음악의 3요소처럼 언어적이기보다는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어떤 특징적 이미지에 의해 비언어적인 측면을 지닌다. 이는 올뮤직의 포스트락 분류사유에서도 지적되고 있는 점이다. 따라서 여기서 포스트락이라는 카테고리명을 잠비나이의 음악을 논하는 장에 조심스럽게 소환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게 된다.

 

이러한 양상에서 생각을 이어본다면 포스트락 씬의 창작력이 로컬 쪽에 가까운 것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문법적인 표현력의 기존 락 사운드는 아무래도 영, 프랑스 등 대형 시장 소속 창작자-소비자에 의해 형성됐다. 같은 씬 안에서 나올 수 있는 대안은 결국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기존 문법의 경계선 안쪽으로 삼투될 확률이 크다. 포스트락 씬에서 유의미한 밴드들의 근거지가 지리적으로 메인스트림과 약간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은 단순한 현상만은 아닐 터다.

 

포스트락이라는 용어와 개념 자체는, 90년대 초반에 나온 것임에도 논란이 따른다. 뉴 에이지나 크로스오버와의 구분도 그다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는 작업이 아니다. 하지만 바꿔 말하자면 포스트락의 경향성에 대해 씬―세계와 로컬을 포함해―의 합의 혹은 논의가 지속적이라는 의미이기도 한다. 정의가 끝난 어떤 스타일은 현장이 아닌 역사책에 이미 한 발을 들여놓게 된다.



포스트락 밴드 잠비나이가 선물할 성과는

 

잠비나이는 오는 3월 텍사스의 음악축제인 SWSX로부터 본격적인 글로벌 일정을 시작한다. 로스킬레 페스티벌은 7월이다. 이들이 올해 보여 줄 해외에서의 연주활동 및 그들을 향한 해외 매체들의 반응이 국내에 미칠 긍정적인 영향은 다음 몇 가지로 압축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국내 팝 음악 유통시장의 빈사(瀕死)화로 인해 대중은 물론 매체에서조차 감각히 다소 흐려졌던, 동시대 세계라는 맥락 안에서 한국 음악의 위치와 새로운 형태의 가능성 확인이다. 아마 로스킬레 페스티벌이 진행될 7월 정도라면 적어도 잠비나이의 존재와 포스트락의 의미관계에 대한 담론 혹은 유효한 질문들이 생산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특히 1 30일자 KBS 9시 뉴스에는 잠비나이의 영상이 꽤 많은 분량으로 나갔는데, 스크립트는 뮤콘2013’ 당시 한국을 방문한 스티브 릴리화이트의 언급 등을 종합한 것으로 공중파 방송 뉴스에서는 드물게 꽤 밀도가 있는 것이었다.

 

또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 대형 아이돌 기획사들의 입장에서는 잠비나이와 같은 밴드가 가진 파격성이 아이템이 될 수 있다. 물론 이일우(기타)와 김보미(해금), 심은용(가야금) 세 고정 멤버가 갑작스레 가요프로그램에 섭외되―었으면 좋겠지만―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외국 인증병이 있는한국 대중문화 창작자-소비자들의 속성, 그리고 해외 작곡가 불러다 아카데미를 만들 정도의 대형 기획사라면 잠비나이와 같은 밴드들의 움직임을 무심히 흘려넘기고 있지는 않을 것 같다.| 한명륜 evhyjm@gmail.com

 

 

잠비나이는 오는 2일 문래 예술공장에서 신곡발표회를 갖는다. [차연]2012년작이니 주제넘은 그림을 그려 보자면 그들의 해외 일정 소화 중에 이런저런 신곡들이 태어날 가능성도 점쳐 볼 수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