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가난하고 술에 취해 있지만, 그들을 존중하면 새로운 세계가 보입니다." 지난 6일 신사동 풍월당에서 열렸던 유니버설의 HFPA(High Fidelity Pure Audio) 런칭회에 연사로 참석한 그룹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 '아티스트가 생각하는 블루레이 오디오의 미래'라는 주제의-때로는 희극적이기도 했던-스피치 중의 고갱이가 아닐까 싶다.

그간 음악 기록물의 포맷과 그 시장가격 형성의 방향은 철저히 소비자의 입장이었다. 물론 시장 가격은 소비자의 입장이 물의 흐름과 같은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뮤지션의 의도는 구매를 결정하는 요인에서 점점 벗어나기 시작했다. 뮤지션의 표현 의도에 가까이 접근하는 매체가 있다면 음반 시장이 무너지지 않았을 거라는, 달콤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다. 오히려 소비자 중심의 편의성 속에 소비자 스스로가 누릴 수 있는 가능성의 경우의 수를 제한하는 방향으로 진행된 것이 바로 미디언 발전의 한 측면이라는 점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낮 시간이어서 목이 덜 풀린 '뮤지션' 김종진의 지적은 바로 이러한 점을 겨눈다.


취재 및 정리_한명륜 사진제공_유니버설뮤직


스튜디오 마스터 음원의 한계_포기할 수 없는 물리적 매력

블루레이 포맷의 CD는 과거 LP에서 CD로, CD에서 MP3등으로 오면서 잃어 온 사운드의 정보량(재생시간과는 별개)을 되찾고자 하는 의지의 산물이다. 물론 지금의 스튜디오 마스터링 기술은 32비트에 인간 '귀명창'이라 불리는 이들이 가진 가청주파수의 열 배에 가까운 384KHz까지 지원한다. 2000년대 중반부터 독자적이거나 소규모의 집단으로 활동하던 오디오 애호가들이 독자적인 포맷의 파일을 판매하기도 했고 영국의 린 레코드는 아예 스튜디오 마스터 음원 자체를 판매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한계가 있었다. 스튜디오 마스터 음원은 PC에 Foobar, J-River, Amarra 등 재생 플레이어를 설치하고 이를 플레이어로 사용하는 방식의 PC-Fi 방식으로 들을 수 있다. 하지만 1.이 방식을 생각보다 어려워하는 이들이 분명 존재하며, 2. 수많은 음원 파일들을 HDD 외장 하드 몇 개로 정리해놓는다는 것에서 물리적 매력을 느낄 수 없는 이들도 상당수라는 것이다.

유니버설과 워너 등 주요 음반기업과 BOSE, B&O와 같은 하드웨어 제조사, 그리고 원천기술 라이선싱 회사인 DTS, DOLBY 등이 '블루레이 오디오 컨소시엄'을 조직한 데는 이러한 맥락이 있다. 물론 이것이 최상의 선택이라든가 음악 산업에서 최종적인 결과물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을 터다.

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메리트는 있었다. 우선 가격이 2만 원 정도로, 현재 일본에서 한화 3, 4만원대에 거래될 수 있다는 점. 그러나 근본적인 것은 확연한 사운드 차이에 있었다. 물론 풍월당 감상실의 오디오 조건과 청음환경 차이 때문일 수 있었지만 특히 음색은 압도적인 차이를 보였다. 인간 지각 연구에서 톤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배음(harmonics)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착각이라 하긴 어려운 상황이었다.



톤, 잊혀진 가능성의 발견

이 날 유니버설이 타이틀로 내놓은 베토벤 소나타와 스탄 게츠의 넘버들도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김종진이 제시한 음원들이 포맷에 따라 제시하는 다른 인상이었다. 샘플로 제시된 음원은 지미 헨드릭스의 "Red House", 그리고 봄여름가을겨울의 "Outsider", "거리의 악사들",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였다. 원곡과 조 개스트워트(Joe Gastwirt)의 리마스터링으로 음역 및 사운드 정보를 훨씬 방대하게 기록한 버전을 아마라(Amarra) 플레이어로 재생한 사운드였다.

개인적인 경험을 말하자면 일단 차이는 확연했다. 특히 앞부분의 인상적인 소절만 들려주던 부분에서도 이미 차이는 확연했지만,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의 리마스터링 버전([Anthology 1988-2013] 수록)을 전체 재생한 마지막 순서는 특히 그랬다. 사실 그 이전 CD로 듣던 신서사이저 소리는 다소 가볍게 느껴졌던 게 사실이었다. 그게 마스터링 과정에서 배음에 해당하는 정보들이 손실되며 톤 자체가 얇아졌다는 걸 몰랐다.

이 새로운 포맷은 클래식과 재즈, 그리고 락의 고전 쪽 라인업으로 발표될 예정이다. 이는 시사하는 바가 있다. 즉 풍부한 배음구조를 살려낼 때 즐길 수 있는 음악, 그리고 현재는 마니악한 취향인 스타일의 음악이 이 포맷의 포착대상인 셈이다. 그렇다면 한국 대중음악의 선배 뮤지션들이 이루어놓은 결과물 역시 이러한 리마스터링 과정을 거쳐 HFPA로 발매됐을 때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판도 영향 적을 듯_카오디오 등 흥미로운 적용 가능성

다만 이는 또 다른 면에서 뮤지션에게 가혹한 과제를 제시하는 일일 수도 있다. HFPA는 우선 여기에 맞는 음원의 제작을 전제로 한다. 봄여름가을겨울의 이번 베스트 앨범처럼 해외 마스터링을 굳이 하진 않더라도, 필연적으로 이를 위한 고사양의 사운드 카드가 필요할 수는 있다.

물론 이는 HFPA가 보편화되었을 때를 전제한다. 그러니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뮤지션들이 이런 압박을 받은 확률은 적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미국에나 일본에서는 이 포맷이 나름 중요한 파이를 차지하고 있지만 한국은 한국이다. 특히 음악 소비시장은 글로벌한 어떤 현상의 반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례가 갈수록 적어지는 경향이 있다. 결국 음악월간지를 돈 주고 살 정도의 사람들이 관심을 보일 공산이 크다. 이 시장을 위해 무리할 이들은 많지 않을 것 같다. 다만 같은 맥락에서 '포맷 장사'로 흐를 가능성은 적어 보이는데 이는 긍정적인 면이라고 볼 수도 있다.

또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카 오디오에서의 가능성이다. 자동차에 적용되는 스마트 기술이 갈수록 진화하고 있는 만큼 블루레이를 읽을 수 있는 오디오 시스템이 적용된다면 의외로 이 포맷의 소비층이 견고해질 가능성도 있다. 뭐 예컨대 정희라의 HFPA 버전이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는 셈이다. 잡설 죄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