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출처: allmusic.com)




66세 일기로사인은 심장마비

 

 

뉴 플라멩코 기타의 거장 파코 데 루치아Paco de Lucia(본명 프란시스코 산체스 고메즈Francisco Sánchez Gómez)가 한국 날짜로 26, 멕시코 캔쿤에서 별세했다. 향년 66세로 다소 서둘러 떠나지 않았나 하는 서운함이 느껴질 만한 세월. 임종의 자리는 가족과 함께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소식은 그의 고향인 스페인 알제리카의 지역 언론을 통해 공식적으로 처음 알려졌으며 신속히 EPA 등 세계 유수 통신사를 통해 타전되었다.

 

국내에서도 음악 관계자들의 SNS를 타고 소식이 퍼지기 시작했다. 특히 3 20일에는 고인과 알 디 메올라와 함께 명연을 펼쳤던 기타리스트 존 맥러플린의 내한공연도 예정되어 있어 안타까움과 애도가 담긴 글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국내에도 ‘기타 트리오로  [Friday Night in San Fransisco](1980)앨범을 통해 존 맥러플린의 연주를 접한 이들이 많다. 또한 이들은 1997 2 25일 세종문화회관에서 내한공연을 펼치기도 했는데, 많은 국내 팬들은 이 때의 공연을 추억하며 애도를 표하고 있다.




 

일렉트릭 기타에 기반한 속주 열풍은 1980년에 절정을 이뤘지만 아음속의 기타 프레이징은 이미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 집시들의 음악인 플라멩코의 전통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이것을 재즈와 재즈에서 갈라져 나온 20세기 전위적 연주음악의 현장으로 편입시키고, 대중음악사에서 돋보이는 음악적 스타일로 이끌어 온 인물이 파코 데 루치아다. 후학인 알 디 메올라 등이 플랫 피크를 사용했던 데 반해 파코 데 루치아의 플레이는 핑거 피킹으로 플라멩코의 전통적 터치감을 최대한 살린 연주를 선사했다.

 

재즈 연주의 중요한 가치와 가능성 중 하나는 모드(스케일을 활용하는 순서) 어프로치. 특히 20세기 중반 아방가르드한 재즈 음악의 발전기에 많은 기타리스트들은 이 모드의 활용 방식으로 자신의 개성을 구축했는데, 파코 데 루치아는 자신의 몸에 흐르는 스페인 전통음악의 본류를 모드적 가능성으로 끌어들였다. 그가 플라멩코 연주를 시작한 것은 다섯 살 때 어머니인 루시아 고메즈로부터였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언어적 정서적 유사성을 고려할 때 아주 특이한 것만은 아니지만, 여하간 플라멩코 기타 연주와 노래에 능했던 그의 어머니는 포르투갈인이었다.





 

전통 혹은 민속음악은 대중음악사상 재즈의 본질과 닿아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피터 페팅거는 『빌 에반스: 재즈의 초상』에서 1966년 뉴욕의 빌리지 뱅가드Village Vanguard에서 발행한 신문의 아티클을 인용한 바에 잘 나타나 있다. 내용인즉슨, 민속음악은 기본적으로 스케일의 음악이며 재즈가 반음계를 향한 강렬한 운동에너지는 민속음악의 스케일이 갖는 범 조성적pan-tonal 성격에 빚지고 있다는 것. [Passion, Grace & Fire](1983), [Siroco](1987)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운 음반에서 파코 데 루치아의 연주는 단순히 이국적 취향―영미 기준에서의―이 아니라 재즈의 본질 형성에 기여했음을 알 수 있다.

 

뛰어난 연주자이다 보니 공연은 물론이고 실황음반 역시 큰 인기를 끌었다. 존 맥러플린과 함께 작곡한 “Altar Mar”가 수록된 [LiveOne Summer Night](1984), [Dos Guitarras Flamencas En America Latina](1994) 등은 그의 실황앨범 중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누리는 앨범들. 자연히 그는 충분한 휴식에 목말라 있었다. 특히 50대 후반에 접어든 2000년대 초중반까지 일 년의 절반 이상을 투어로 이동해야 하는 데 지쳐 그는 멕시코 유카탄에 머무르기도 했다. 그의 마지막 공연은 2013 7 31의 제 49회 카르타고 국제 페스티벌Carthage International Festival에서였으며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제 살아 있는 그의 연주는 다시 볼 수 없다.| TONE OF A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