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 가사에 작용하는 강한 인력


2010년 에피톤 프로젝트와의 작업을 통해 이름을 알리며 데뷔한 이래 루시아(심규선)의 존재감은 화려하거나 독보적이진 않아도 은근한 힘으로 성장해 왔다. 대학가요제까지 합산한다면 올해로 필드에서의 커리어는 올해로 10년이 된다. 그런 만큼 자신의 이미지에 다른 작곡가 이름이 함께 언급된다는 사실은 부담스럽거나 서운했을 수도 있다. 


사실 루시아가 자신의 작품에 대한 명백한 오너라는 것은 현재완료진행형이다. 다만 데뷔 초 함께 했던 에피톤 프로젝트 차세정의 이름이 종종 함께 거론됐던 것은, 굳이 말하자면 미디어나 평자들의 책임이지 않을까 한다. 다만 이것이 잘못이라기보다는 동시대 문화컨텐츠에 대한 독법이 갖는 한계에 의한 것일 공산이 크다.


하지만 그러한 평단이나 미디어의 사정은 사정이고, 어찌 됐든 뮤지션과 프로듀싱을 담당한 레이블 측은 이 재능 있고 아름다운 뮤지션이 조금이라도 더 변별력을 가져야 한다는 데 포커스를 맞출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그래서인지 두 번째 정규앨범 [Light & Shade]는 이전 결과물과는 사뭇 다른 이 느껴진다. 다만 앨범의 제목처럼 이 힘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림자'를 먼저 이야기해 보자면 역시 가사 쪽의 이야기가 되겠다.


가사는 주제의식을 담는 데 있어 뮤지션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그릇이다. 루시아는 사실 이 가사에 많은 공을 들여 왔다. 레이블 측의 보도자료에서도 '시간'은 창작자의 고통을 의미한다는 설명이 있는데 타당한 설명이다. 특히 두 장의 EP [Décalcomanie](2013), [꽃그늘](2013) 서정이라는 메커니즘을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나름 의미 있는 결과를 얻었다. 이에 비해 정규 2집은 서사적인 전략을 택했다는 것이 제작 의도다. 서사는 다름아닌 스토리텔링, 즉 이야기다.


그런데 함정이 있다. 대상에 대한 설명이나 묘사는 이야기를 구성하는 한 요소가 될 수는 있어도 이야기 그 자체가 되지는 못한다. 특히 그 대상에 대한 예찬적인 성격이 더해질 때 설명, 묘사라는 언설은 결국 화자의 내면적 정서에 환원된다. 고백 또한 자신에 대한 일종의 정서적 설명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되면 서정의 힘이 더욱 강하게 작동할 수밖에 없다. 물론 서정은 서사의 대립항이 아니다. 다만 서사를 위한 의미들의 시간적 흐름과 재구성을 어렵게 할 수 있다는 뜻이다.


[Ligth & Shade]의 오프닝 트랙 "한 사람"은 좋은 곡이냐 아니냐 하는 복합적이고 뭉뚱그려진―음악 컨텐츠의 감상에 있어서 흔히 있을 수 있는―질문에는 전자로 답할 수 있다. 그러나 루시아라는 작자가 가사쓰기를 통해 겪은 창작의 고통이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로 승화되었느냐, 즉 서사적 면모를 얻었느냐 하는 대답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이어야 할 것 같다. 이 곡의 가사가 씌어진 방식은 곡에 등장하는 2인칭의 존재를 신으로 상정한다면 찬송곡으로 손색이 없을 정도다. 찬송곡으로부터 넘쳐나는 서정성은 그 곡이 연주되거나 불려지는 종교의식(ritual)의 현장, 그리고 참여자들의 종교적 희열을 통해 충분히 소화될 수 있다. 비슷한 기능으로 움직이는 것이 주인공의 독창으로 이루어지는 뮤지컬의 테마곡이기도 하다.


그러나 루시아의 음악은 어찌 됐건 대중음악의 영역에 있고, 대중음악은 청자와 음악의 용도를 미리 한정할 수는 없다. 물론 전술했듯 청자의 의미 인식 기능을 직격하는 가사는 주제의식을 전달하기에 가장 좋은 도구다. 그러나 이를 통해 적극적인 변화상, 특히 주제를 전달하는 방식의 변화를 보여주려는 의도는 주효하기 오히려 어렵다. 루시아라는 뮤지션의 패착이 아니라 음악에서 가사를 통한 주제 구현 자체가 의외로 짙은 '그늘'이라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는 악곡의 스타일에도 책임 아닌 책임이 있다. 리듬 파트의 어택이 전작과는 확연히 비교될만큼 부드럽다. 그렇다 보니 실제의 박자보다 체감되는 호흡이 길다. 스트링과 피아노처럼 울림이 긴 멜로디파트가 가세하면서 이런 면모는 더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들리는 가사는 그야말로 뮤지컬의 주인공의 독창으로 다가온다. 청자가 뮤지션을 위한 가상의 무대를 항상 설정하고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면 분명 버거운 측면이 있다.



유연한 흐름의 현악 운용, 절창으로서의 '각성' 돋보여


그러나 이런 악곡 구성 자체의 성격만으로 보자면 오히려 충분한 서사성이 감지된다. 오히려 곡 구성 자체는 에피톤 프로젝트의 손이 많이 갔던 초기작이 드럼의 확연한 분절감을 통해 파사쥬(빛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인상)가 구분되면서 좀 더 인상주의적이고 비서사적인 감각이 강했다. 그러나 루시아는 이전작품들의 향취가 그나마 가장 많이 남아 있는 "Be Mine"에서조차 드럼의 어택을 최소화하고 유연하고 굽이치는 줄기를 만들어냄으로써,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고 있다. 거의 불가능하겠지만-다른 의미로 미친 짓일 수도 있지만- "한 사람"이나 "Silver & Gold" 역시도 의도적으로 가사의 의미를 듣지 않고 보컬의 음성과 흐름만을 좇다 보면 전작에서 느낄 수 없던 클래시컬한 흐름을 감지할 수 있다.


물론 어떤 무대조건에서도 안정적인 퍼포먼스를 보이는 보컬 능력은 루시아의 선천적 재능(개인적인 견해로는 노력도 이 안에 수렴되는 것 같다)이다. 그러나 이번 앨범에서는 정말로 절창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물론 "안녕, 안녕"의 클라이맥스 부분 등 이전 곡들에서도 뛰어난 보컬 퍼포먼스는 선보인 바 있지만, 이렇게 긴 호흡을 살리면서 자신을 화끈하게 표현하는 모습은 분명 새로운 면모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모습이야말로 루시아가 보여주고자 했던 뮤지션의 성장과정을 가사보다도 더 잘 제시하고 있는, 그야말로 '빛(Light)'의 면모가 아닐까 한다.


따라서, 이번 앨범이 루시아 자신에게 어떤 스타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시도의 장만은 아니었으면 한다. 앞서 언급했듯 이미 자신의 존재감은 누구의 이름과 함께 언급된다고 해서 흐려질 만큼 약하지 않다. “Who”의 가사를 인용하자면, 그저 자신에게 좋은음악적 요소들을 찾고 이를 통해 자신으로서 행복한 뮤지션이기를 바란다.

 

참고로 이 글에서의 로서로써는 이 글에서 필요한 의미에 따라 곡에 사용된 것이 아닌 국립국어원의 맞춤법을 따랐음을 밝히며 양해를 구한다.| 한명륜 evhyjm@gmail.com

 

음반 및 이미지 자료제공 파스텔뮤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