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8, 에디터는 코엑스 3층 컨퍼런스 센터에서 열린 ‘2014모파이MoFi에 다녀왔다. ‘모바일피델리티의 합성어인 이것은 음악 및 음향산업 종사자들에게도 그리 익숙한 개념은 아니다. 그러나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이 콘텐츠를 수용하는 태도와 의식에 있어 이루어져 왔던 변화, 그것을 가시적 영역에서 논의하게 만드는 테마가 아닐까 싶다.


글_사진 한명륜 자료제공 2014MOFI SHOW, 굿인터내셔널 


 

포터블에서 모바일로

 

포터블portable’, 휴대할 수 있는, 옮길 수 있는.

모바일mobile.’ 이동이나 움직임이 자유로운.

 

두 형용사의 의미는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음악 정보 재생기기 발전사의 측면에서 보면 두 용어는 한 혈통을 가진 늑대와 개처럼 갈라졌음을 알 수 있다.

 

80년대 좀 깬대학생들의 MT에는 CCR이나 아바의 음악을 들려주던 포터블 카세트가 있었다. 우람한 C형 건전지(지름 26mm, 높이 50mm)가 네 개 혹은 여섯 개 들어가는 이 카세트의 포터블이란 휴대보다는 어딘가에 옮겨놓는것을 뜻했다. 남자 복학생들의 테스토스테론 향기 가득한 어깨, 혹은 배낭에 실린 그것들은 북한산 기슭, 강촌 물가 자갈밭 등에 자리를 잡았다. 전설의 시대에 옮길 수 있음은 부가적인 기능이었던 셈.

 

그에 비해 2000년대 이후 등장한 모바일 음향기기들은 훨씬 이동 거리가 많았다. 수 없는 사람들의 생활 패턴에 실려 있는 존재였던 까닭이다. 음원정보 재생장치가 소형화를 거듭하다가 전화기에 수용된 이력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러면서 콘텐츠 수용 창구의 미분화와 간편한 휴대의 욕구는 상호 피드백을 이루어 왔다.

 

 

내 세상이여 나에게 충실해 줘요

 

안드레이 줄랍스키의 <피델리티Fidelity>(2000)라는 영화가 있다. 여주인공 클레어는 결혼 생활의 인력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물로 소피 마르소가 맡았다. ‘fidelity’는 사전적으로 충실도, 부부 간의 신의를 뜻하지만 제목이 딱히 반어랄 것은 없다. 사람들이란 구하지 못할 것을 입에 담고 그리는 데 능하지 않은가.

 

음향기기에서 피델리티는 우리에게 파이Fi라는 약어로 존재감을 굳혔다. 얼마나 음악적 정보를 인간이 만족할 만큼 충실하게 전해주느냐 하는 문제다. 사실 인간은 자신의 종이 어떻게 세계를 지각하는지 그 메커니즘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했다. 따라서 애초에 그 충실함의 기준은 객관적이기는 어렵다. 대신 이 분야에서 고도로 훈련된 많은 이들의 주관이 모이며 수긍할 만한 합의를 도출해 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합의는 때로 어떤 신화를 만들어내거나 그렇게 빚어진 신화의 영향을 받았다. 특히 산업의 패러다임이 교체될 때면 기존의 파이를 차지하려는 쪽과 지키려는 쪽이 이 합의 결과물, 혹은 신화를 두고 싸우게 된다. 에컨대 최근 독일, 한국 등 디지털 기기가 발달한 나라에서 종종 음원 정보 저장매체나 재생 기기별 음질 구분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는 것도 그러한 싸움의 일환이다. 테스트의 존재를 음악에 대한 모욕으로 생각하는 측과, 거대 음반사(미디어 그룹을 모기업으로 가진)가 만든 음반 신화 속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목소리의 충돌인 셈이다.

 

이런 일련의 사정들을 보면 피델리티라는 단어, 이를 보는 진의는 단순히 음원 정보가 충실히 재생되는가의 여부가 아닐 수도 있다. 선명도라는 점에 감안해 데피니션definition이라는 용어가 선택될 수도 있었다.

 

물론 사후(事後)에 그 의미가 쌓였을 수도 있겠지만 결국 연주와 녹음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어떤 인상의 평균치를 얼마나 충실하게 재현할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반영되지 않았을까.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청각정보 그리고 거기에서 얻는 쾌감의 척도로 충실도라는 개념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히 매력적인 일이다.

 

특히 모바일 재생기기처럼 개인화되어 있는 콘텐츠 소비 창구와 결합한 사업에서, 이러한 피델리티라는 개념은 개인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상징적 만족도 제고에 기여할 무엇인지도 모른다. 기실 물리적으로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주파수는 극히 제한된 것으로 냉정하게 말해 피델리티는 허상일 수 있다. 그렇다면 모바일 피델리티는 서로 결합돼 문화를 소비하는 사람들의 또 다른 욕구를 은유하는 것이 아닐까.





 

불안한 주거상황, 모파이에 희소식?

 

연례 인사 같지만 농담이 아니라 2014년 초반의 주거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임대인들은 거의 시세를 적용해 하루아침에 2, 3000만 원 인상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여유있게 융통하기한 쉬운 일이 아닌 경우가 더 많다.

 

한국인처럼 집이라는 공간에 소유의식을 갖고 애착을 갖는 경우도 드물지만 작금의 상황을 보자면 집이 마음 놓고 쉴 만한 휴식의 공간은 못 된다. 특히 주거불안 문제에 거의 직격당하는 젊은 층의 경우 말할 것도 없다.

 

젊은이들이 음악 콘텐츠의 주 소비자라는 측면을 감안하면 음향기기 산업은 좀 더 입체적인 면모를 보여 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정지된 음향재생기기가 공간을 울리는 것을 즐기는 식의 음악감상이 아니라 주편에 를 끼치지 않을 밀폐형의 리시버를 찾는 상황이 오는 것이다. 또한 주거를 마련했다고 하더라도 부피가 큰 하이파이 시스템하이 파이 시스템이라고 모두 부피가 큰 것은 아니지만은 대부분의 경우 선호사항이 아니다. 특히 2014년 들어 강화된 층간소음 배상 규정은 기존 거치형의 하이파이 시장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런 가운데 보다 넓은 다이내믹 레인지와 개선된 출력의 헤드폰 및 이어폰은 어떻게 보면 기회를 맞은 셈이기도 하다. 물론 어떤 산업이든 동력을 얻는다는 것은 반갑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의 삶 자체가 모바일화를 넘어서 정착할 수 없는 삶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뜻을 은유하는 게 아닐까.| 한명륜 evhyjm@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