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그 다음을 위한 8분

사실 순서는 어떤 해명을 한다 해도 그럴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나마 오해를 줄이기 위해 선택하는 배열이 가나다순, 영문은 후표기다. 물론 영어지만 통상 한글로 발음을 표기하는 경우가 많은 팀은 그 음절의 가나다 순을 따랐다.

따라서 <헬로루기2013> 두 번째 프리뷰의 주인공들은 아시안 체어샷, 청년들, ECE 되겠다. 서문 없이 바로 들어가면 1편에 비해 성의없어 보일 것 같아서 썼는데 문장의 길이를 넘어서는 궁색함이 '뽀록'났다. 밑의 밴드들이 잘 가려 주길 기대하면서.

아시안 체어샷(5월의 헬로루키)

'아체샷', 멤버들의 이른 생일 파티 가능할까?

개인적으로 특별한 팀이다. 2013년도 상반기, STUDIO24 매거진에 몸담고 있을 당시 인터뷰이 복이 있다고 느끼게 해 준 팀. 만물이 땀냄새를 풍기기 시작하는 5월 중순이었다. 같은 레이블의 강허달림 님은 출산일을 얼마 안 남긴 시점이었다. 사진에 나온 장소는 문래동 문래예술공장인데 정말 장소도 본인이 섭외했지만 '때깔'부터 락적이지 않은가(깔때끼로 보였다면 죄송합니다).

이로부터 몇 달이 지난 제2회 <잔다리페스타>에서 확실히 이 팀의 공연에 카메라가 많이 붙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뮤콘과 겹쳐 해외 관계자들의 발걸음이 잦았고, 그들은 자기네와 비슷한 뭔가보다는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걸 만나길 바라는 경향이 있었다.

사실 이들에게 루키라는 명칭이 다소 몸에 끼는 옷 같기도 하다. 지난 해 대상 팀인 코어매거진과도 비슷한 입장인 셈. 그래도 이들은 앨범이 나왔을 때의 감상을 "이제 루키 탈출했구나 싶다"고 소박하게 표현할 줄 알았다.

EP [탈]에 담긴 에너지는 극히 유니크하다. 굿이나 택견을 떠올리게 하는 리듬의 유연한 운용과, 굽이지는 멜로디 안에 표현되는 강한 힘. 입체적인 기타.

여기에 지난 9월 발표한 디지털싱글 [계절아 다시]에는 강력한 딜레이 효과를 순조롭게 곡의 멜로디 안에 포섭해 낸 대담함도 엿보였다. 내년 첫 정규앨범의 음악적 규모는 우리가 봐 온 그들의 모습 그 이상으로 거대할 수 있다는 뜻일지도.

그러고 보니 11월 27일은 드러머 박계완, 28일은 기타리스트 손희남의 생일이다. 베이스와 보컬을 맡은 황영원의 생일은 5월로, 그 때 앨범 발매가 됐으니 이미 한 번의 겹경사를 치른 셈. 9일이 이른 생일파티가 될 수도 있다.


청년들(8월의 헬로루키)

우리 이미 친해지지 않았나?

한국대중음악상이든 헬로루키든 앨범 아트워크에 대한 특별한 선정순서가 있다면, 아시안 체어샷과 함께 '청년들'의 첫 앨범 [청춘]을 꼽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우선 사진은 노출 과다로 다소 날것스럽고 어찌 보면 '야한' 맛이 있다. 낙서 같은 드로잉이 들어가며 톤이 한 번 가라앉나 싶지만 자세히 보면 멤버들이 취하고 있는 액션은 상당히 가학-피학의 조합 같은 면도 보인다. 과거 (Ramstein)이 종종 보여 준 액션의 코믹 버전 같기도.

농담 같지만 거칠 것 없이 솔직하게 드러내는 식의 사운드와 은근 짜임새 있는 편곡의 긴장 관계가 보이는 이들의 음악이 재킷과 묘하게 맞아떨어지고 있다.

물론 이 모든 연출에 묻어나는 '루키스러움'은 묻어난다. 조지웅, 이승규 두 기타의 퍼즈 합은 세련됐지만 아직 오리지널리티로 다가올 정도는 아니고, 리듬 파트 역시 견고하지만 모던락의 관습적 수사를 어떻게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뚫을 것인지를 확실히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한데 이런 느낌마저 흰색 바탕에 한글 폰트 공간체의 변형처럼 보이는 타이틀 '청춘' 두 글자가 보여주는 인상으로 나름 상징적인 의미를 얻고 있다. 좋은 디자인 아티스트를 만나는 것도 밴드의 능력이 고 복이다.

아, 그렇다고 음악이 재미없어서 재킷 디자인 이야기를 한 게 아니라는 첨언을, 오해가 많은 세상이라 붙여 둔다. '이런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하는 경이로움만이 창작이 아니라, 해당 스타일의 애호가라면 어디선가 들어봤을 법한 그런 사운드를 내는 능력은 '친화력'면에서 비할 바 없는 장점이다.

친구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듯한 SNS 멘트는, 간명하되 갖출 예의는 다 갖추고 있다. '친하게 지내'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무서워져서 이런 식의 인사는 하지 않는 세상에. 그런데 어쩐지 이 멘트에 라디오를 진행하던 태연이 떠올라, 가슴 한 켠이. 헛소리 죄송하고, 내일 무대서 그 친화력 유감없이 보여주기를.


ECE(7월의 헬로루키)

음악은 공연장 '현피'가 제맛

<헬로루키>를 비롯 에 올라오는 팀들 중 상당수 팀의 기타리스트가 퍼즈와 빈티지 악기를 조합한 사운드를 선보인다. 퍼즈 자체의 정형적이지 않은 사운드가 젊음의 에너지를 표현하기에 좋은 수단인 건 맞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패시브(자체에 프리앰프가 없는 경우)악기를 중심으로 하는 사운드인 탓에 사실 이들이 보여주는 감각의 100%를 TV로 느낀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좋은 기획과 좋은 밴드가 현장의 제약을 가운데 두고 서로 안타까워하고 있는 셈이다.

해서 만일 ECE(Emergency Call Equipment)의 음악을 TV로 보고 다소 큰 감흥이 오지 않았다면 필히 결선 무대를 볼 것을 권한다. "붐비세"를 들어보면 베이스(박주원)와 드럼(이동욱)의 합은 마치 채드 스미스/플리(Chad Smith/Flea) 조합의 미니어처 같은 느낌이 든다. 타이트한 것 같으면서도 풀어 줄 때 적당히 풀어줄 줄도 아는 리듬 운용을 보면 펑크보다는 펑크의 자유로움이 적당히 가미되면서도 정교한 훵크(Funk)에 가깝다.

그나저나 이 팀은 보컬(김동용) 자체가 퍼즈다! 평범한 보컬인 것 같지만 기타(금오)의 음색과 묘하게 닮은 찌그러짐이 들린다. 물론 본질적으로 앰프를 통해 찌그러져 나오는 사운드와는 배음 구조가 다르기에 충돌하지 않고 나름의 조화를 얻어낸다.

물론 이런 감각 역시 TV 방영으로 느끼기 쉽지 않았을 부분. 내일 직접 맞닥뜨릴 사운드,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그나저나 자신들의 곡 설명을 너무 잘 한다. 공간과 씬의 형성을 이어 설명하다니, 이제 뮤지션이 이런 일까지 하면 나 같은 사람은 뭐 먹고 살라고. 전기뱀장어의 황인경과 함께 음악필자들을 긴장케 하는 이들이 나타났다.



※ 맨 위 사진 네 컷 조합 중 아시안 체어샷은 STUDIO24 6월호 인터뷰 사진의 B컷(By 이훈구 STUDIO Panda)